소설방/유혹

<282> 변신-15

오늘의 쉼터 2015. 4. 4. 19:36

<282> 변신-15 

 

 

 

 

윤 회장과 정희가 고개를 돌렸다.

“저어…언니, 화장실 좀… 갑자기 배가 너무….”

유미가 배를 잡고 엉거주춤 일어났다.

“아유, 너 아까 점심 먹은 게 탈났구나. 회장님, 잠깐만요. 화장실 좀 알려 주고 올게요.”

정희가 유미의 팔을 붙들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온실로 들어서자마자 유미는 맹인 흉내를 접고 급하게 걸었다.

“언니, 알려만 줘. 내가 찾아갈게.”

“그럴 수야 없지. 연기를 하려면 끝까지 완벽하게 해야지.

 

저 회장님 눈치 채면 나 골치 아파. 그러게 왜 봉사 흉내를 내며 따라온 거니?”

“언니도 든든하고 좋다며? 이제 언니 같은 안마의 거장은 새끼 안마사를 키워야지.”

“나야 너 같은 조수가 운전도 해주고 따라다니면 좋지.

 

그런데 안마 그거, 쉬운 거 아냐. 정상인은 맹인한테 못 따라가.”

“그럼, 나도 눈을 멀게 할까?”

“얘는….”

“그나저나 회장님은 얼마나 탕에 계셔?”

“30분 정도? 기분에 따라 달라. 여기가 화장실이야.

 

너 화장실만 갔다가 다른 건 절대 손대지 마.

 

나를 철석같이 믿고 회장님이 네가 맹인인 줄 아니까 그렇지,

 

원래 의심이 많은 양반이야.”

“당근이지. 언니, 얼른 가 봐.”

유미는 화장실로 쏙 들어갔다.

 

정희의 지팡이 소리가 멀어지자 유미는 몰래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아까 봐 두었던 서재를 향해 걸음을 떼었다.

 

아직까지 잔잔한 음악이 흘러 나오는 서재는 질 좋은 원목으로 짠 서재장 속에

 

고급스러운 장정의 전집류들이 그득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과시용 서재 같았다. 한쪽 면엔 전문가가 아닌 유미의 눈에도

 

고가품이 확실해 보이는 오디오와 커다란 스피커, 그리고 대형 TV가 보였다.

 

한쪽 면에 LP음반과 CD들이 가득 꽂혀 있었다.

 

오래된 비디오테이프를 수납한 장도 보였다. 

유미는 그곳을 잽싸게 뒤졌다.

 

동진의 말을 기억해 보면, 윤 회장은 비디오테이프를 서재에 보관할 것이다.

 

시간은 없고 마음은 급했다. 유미는 급기야 시야를 흐리게 하는 선글라스를

 

머리 위로 올리고 혈안이 돼 그것을 찾았다.

 

그러나 유미가 찾는 비디오테이프는 보이지 않았다.

 

너무 마음이 급한 나머지 눈에 띄지 않는 걸까?

유미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찬찬히 방을 둘러보았다.

 

책상으로 가서 서랍을 열어보았다.

 

모두 잠겨 있었다.

 

잠겨 있으니 더욱더 조바심이 나고 궁금했다.

 

그 비디오테이프는 잠긴 서랍 안에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천신만고 끝에 잠입한 이 짧은 시간에 어떻게 저 잠긴 서랍을 열 것인가.

 

그리고 그것이 분명히 저 안에 있다는 보장이 있을까?

그때 책상 위의 여러 물품 중에서 은으로 세공된 작은 액자 틀 안에 흑백 사진이 보였다.

 

사진 안에는 두 사람이 들어 있었다.

 

젊은 시절의 윤 회장과 그의 부인인 듯한 여자였다.

 

동진이 자신의 어머니를 일컬어 정숙하고 속 깊은 여인이라 말했듯이,

 

한복에 밍크 숄을 두른 여자는 조신하고 참한 인상이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느낌의 얼굴이었다.

 

어쩌면 흑백 영화에서나 보았던 60~70년대 품위 있는 사모님의 전형적인 얼굴이라 그럴까.

잠시 정신을 놓고 사진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방문을 여는 소리가 나고

 

등 뒤로 누군가가 다가오는 기척이 났다.

 

그런데 그 누군가는 동작을 멈추고 잠시 서 있는 것 같았다.

 

고개를 돌리려니 갑자기 가슴이 떨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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