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3> 변신-16
“지영아, 어디 있는 거니?”
등 뒤로 다가왔던 정희가 다시 서재 밖으로 나가 유미를 찾았다.
유미가 발소리를 죽여 서재를 나갔다.
“언니, 여기.”
정희가 유미의 기척을 느끼고 유미에게 다가왔다.
“너 괜찮니?”
“아니, 안 괜찮아. 설사를 했더니 어지러워.”
“그래? 안 그래도 회장님이 너가 어떤지 가보라고 하셔서.
안 좋으면 가정부 방에 가서 좀 누워 있으라셔.”
“근데 언니는 왜 벌써 끝난 거야?”
“뭐 여기가 일본의 ‘소프란도’도 아니고…내가 옆에 있을 때도 있지만,
보통은 탕에서는 혼자 쉬셔. 나오셔야 본격적으로 일하는 거지.”
“그럼, 나 가정부 방에 가서 쉬고 있을 테니까 언니는 얼른 가 봐.
회장님 신경 쓰이게 하지 말고.”
“그럴래? 왠지 오늘 회장님이 평소와는 좀 다르네.
좀체로 남 걱정 안 하는 분인데, 너한테 신경 쓰는 눈치야.
노인네가 흥분하셨나? ㅋㅋㅋ….”
정희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웃었다.
정희가 사라지자 유미는 가정부 방에 누웠다가 다시 서재로 갔다.
이번에는 책상 서랍 열쇠를 찾아볼 작정이었다.
서재를 둘러보다 보니 책장에 사진틀이 몇 개 더 보였다.
건설 현장에서 헬멧을 쓰고 찍은 젊은 날의 윤 회장,
그의 부모로 보이는 아주 작고 낡은 사진 속의 노인들,
그리고 동진의 어릴 적 사진도 보였다.
동진이 초등학생 무렵의 가족사진도 보였다.
책상 위에 열쇠꾸러미가 보였다.
유미는 간절히 문이 열리길 원하며 속으로 주문을 걸었다.
하나씩 열쇠 구멍에 넣어 보았다.
“열려라, 참깨!”
“열려라, 들깨!”
“열려라, 아몬드, 땅콩, 호두, 보리, 콩!”
유미는 모든 곡식의 씨는 다 부를 작정이었다.
그래도 열릴 기미가 없었다.
“에잇, 열려라 빈대떡! 파전! 서랍! 지갑!”
윤 회장이 좋아하는 음식에서부터 생각나는 대로,
되는대로 부르고 있자니 지팡이 소리와 윤 회장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유미는 급히 서재에서 나왔다.
“안 좋으면 방에 들어가 쉬래도.”
“아입미다. 그래도 오늘은 언니를 도와줄라꼬 왔는데….”
윤 회장이 안방으로 들어가자
정희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안방의 침대 위에 깨끗한 타월을 깔았다.
가운을 입은 채로 앉아 있는 윤 회장의 어깨를 정희가 주무르기 시작했다.
“지영아, 저기 드레스룸으로 가면 첫 번째 장에서 회장님 속옷을 꺼내 와.”
정희가 유미에게 아무 생각 없이 심부름을 시키다가, 아차! 하는 얼굴로 고쳐 말했다.
“아냐, 그건 참 너가 처음이라 어렵겠다.
내가 할게. 대신에 너는 회장님 가운 벗겨 드리고 침대에 눕혀 드려.”
유미는 엉거주춤 윤 회장에게 다가갔다.
윤 회장은 눈을 감고 있었다.
유미는 윤 회장의 가운을 벗겼다.
가운 안은 알몸이어서 찔끔 놀랐지만,
유미는 눈을 감고 표정의 변화 없이 윤 회장을 침대에 눕히고
깨끗한 흰 타월을 그의 몸에 덮었다.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몰랐다.
윤 회장은 맹인 안마사들 앞이라 그런지 전혀 부끄러운 기색이 없었다.
정희가 오디오를 켰다.
은은하고 잔잔한 음악이 깔렸다.
창의 암막 커튼을 치고 빛을 차단했다.
정희가 유미를 흘낏 보더니 천천히 옷을 벗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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