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유혹

<280> 변신-13

오늘의 쉼터 2015. 4. 4. 19:32

<280> 변신-13 

 

 

 

 

정희는 다리가 아직 약간 불편해 보였으나 익숙하게 저택으로 들어섰다.

 

그 뒤를 따르는 유미는 정희의 가방을 들고 뒤따르고 있다.

 

현관을 들어서니 거대한 거울이 대리석 바닥에 반사되어 눈을 쏘았다.

 

유미는 다시 한번 자신의 모습을 재빠르게 거울을 통해 일별했다.

 

평범한 청바지에 파카를 입고 분홍색 야구 모자를 깊이 눌러 쓰고,

 

화장을 전혀 하지 않은 얼굴엔 커다란 검은 선글라스를 썼다.

 

살짝 긴장이 되었다. 집 안은 고요하고 아무도 그들을 맞이하는 사람이 없다.

 

정희가 속삭였다.

“오늘은 가정부가 외출 나간 날이야.”

그래서일까. 정희의 발걸음은 거침없이 음악이 흘러나오는 어느 방을 향했다.

“주로 서재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셔.”

서재라면? 유미는 검은 선글라스 속의 눈을 빛내며 주위를 세심하게 살펴보았다.

 

집은 컸지만 실내는 생각보다 무척 소박했다.

 

인테리어는 비싼 장식품 대신에 원목의 질감이 그대로 드러나는 자연친화적인 느낌이 강했다.

 

그래서인지 집 안에서 숲속의 나무 향이 솔솔 새어나오는 것 같았다.

 

콘크리트 건설왕국 황제의 집답지 않았다.

정희가 어느 방 앞에서 노크를 하자 안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자 서재의 책장이 보이고 클래식 음악이 갑자기 폭포가 되어 쏟아졌다.

 

잠시 후 커다란 안락의자에 앉았던 남자가 몸을 돌렸다.

 

그가 리모컨을 들어 조종하자 음악소리가 잔잔해졌다.

정희가 머리를 조아렸다.

“회장님, 안녕하셨어요? 참 전화로 말씀드린 제 이종사촌 동생이에요. 얼른 인사 드려.”

정희가 유미의 팔을 잡았다.

“회장님, 안녕하십니까? 김지영이라꼬 합니다.”

유미가 고개를 푹 숙이며 인사했다.

 

자신도 모르게 무뚝뚝한 부산사투리가 나와 주었다.

 

윤 회장이 슬쩍 일별했다.

 

그리고 눈길을 거두고 정희를 향해 물었다.

 

휴우, 다행이다.

 

변장에 연기까지 무리 없이 잘 먹혔다는 얘기다. 

 

“그래. 발을 다쳤다구?”

“예, 이제 좀 웬만합니다.

 

그래서 혼자 다니기가 겁이 좀 났는데, 오늘은 얘랑 오니 마음이 편합니다.

 

안 그래도 얘가 늘 마사지를 배우고 싶다고 노래를 하던 터라….”

“불편한데 와 줘서 고맙네. 내가 성질이 지랄 맞아서 한 주라도 거르면

 

지랄병이 날 거 같단 말이지. 그렇다고 기사를 보내기도 그렇고,

 

내가 자네 집에 가는 것도 그렇고….”

“그럼요, 회장님. 제가 충분히 이해하고 압니다. 마음 쓰게 해드려 죄송할 뿐입니다.”

윤 회장이 유미를 한 번 쓰윽 보더니 갑자기 정희에게 물었다.

“내림인가?”

“예…?”

“앞 못보는 거 말이야.”

“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시신경에 문제가 있어요.

 

저렇게 된 지는 그렇게 오래되진 않았어요.”

“ㅉㅉㅉ… 더 답답하겠구먼.”

윤 회장이 혀를 찼다. 정희가 물었다.

“오늘은 자쿠지로 가시죠?

 

남불의 그라스에서 주문한 좋은 허브를 가져왔어요.”

미리 정희에게 들은 얘긴데, 윤 회장은 가정부가 없는 토요일엔

 

온실과 연결된 테라스에 설치된 자쿠지에서 목욕을 즐긴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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