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1> 변신-14
가운을 갈아입고 나온 윤 회장이 정희의 부축으로 자쿠지로 향했다.
부축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윤 회장이 정희의 손을 잡고 인도하는 모습이었다.
거실의 한쪽에 연결된 유리천장으로 된 복도를 걸으니 툭 터진 공간이 나왔는데,
그곳이 온실이었다. 그리 넓지는 않았지만, 마치 열대 이국의 어느 정원에 온 듯
선인장과의 꽃들과 서양란,
이름을 알 수 없는 백화지초가 화려한 꽃과 향으로 마음을 홀리게 했다.
유미는 꽃들을 보다가 순간 아차했다.
자신이 지금 맹인이라는 걸 잊었다.
유미는 더욱 더 흰 지팡이를 또각또각 저으며 눈을 감고 코로 향기를 맡는 시늉을 하며 걸었다.
온실이 끝나는 곳의 유리문을 여니 넓은 테라스가 나왔다.
눈 앞에는 바로 단풍든 산의 바위가 천연 요새처럼 나지막이 둘러싸고 있었다.
북한산 자락일까? 멀리 맑고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멋진 봉우리들이 보였다.
파라솔과 테라스용 탁자와 의자들이 보이고 크지 않은 아담한 자쿠지 탕이 보였다.
윤 회장이 뜬금없이 정희에게 물었다.
“그런데 쟤는 좀… 하나?”
“예? 뭘요?”
“안마 말이야.”
“아, 예. 완전 초짜예요.”
“진작에 좀 가르쳐 주지 그랬어.”
정희가 머뭇거렸다.
그때 유미가 부연 설명을 했다.
정희에게 대충 둘러댔지만, 입을 맞춘 건 몇 가지 사실밖에 없다.
“눈이 이래 가뿌린 지는 오래 안 됐다 아입니꺼.”
“동생 고향이 부산인가 보군.”
“예, 부산에서 살았어예. 서울 올라온 지는 얼마 안 됐꼬요.
먹고 살기 힘들어서 새끼 안마사로 써달라꼬 언니한테 쪼르고 있어요.”
유미는 목소리가 걸걸했던 여고 때의 친한 친구를 떠올리며 연기하듯 말했다.
“거 부산 사투리 오랜만에 들으니 듣기 빡세다.”
윤 회장이 유미를 보며 못마땅한 얼굴로 말했다.
유미 대신 정희가 얼른 나서서 대답했다.
“예, 회장님. 이모가 부산으로 시집갔어요.
얘가 서울에 온 지 2년이나 됐는데 사투리를 완전히 못 버려요.
긴장하면 나온대요.”
정희가 유미에게서 자신의 가방을 빼앗아 자쿠지 탕에 풀려고 준비해온
오일과 말린 허브, 꽃이 든 봉투를 꺼냈다.
정희가 유미에게 그것을 탕에 풀고 뿌리는 걸 도와 달라고 했다.
유미는 정희가 시키는 대로 조심스레 그 일을 도와줬다.
윤 회장은 산을 향해 맨손체조를 하듯 크게 몸을 움직였다.
벽에 내장된 수납장에서 정희가 타월을 꺼냈다.
“지영아, 넌 저쪽 파라솔 밑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어.”
유미는 더듬더듬 거리며 의자에 앉았다.
정희가 윤 회장에게 다가가 말했다.
“회장님, 준비가 다 되었어요.”
윤 회장이 그 소리를 듣고 가운을 풀었다.
유미는 순간 움찔했으나 보아도 못 본 척해야 했다.
어쩌면 시아버지가 될 사람의 알몸을 보아야 할지 모르지만,
‘나는 지금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여자다’라고 자신을 세뇌했다.
윤 회장은 가운을 벗었다.
노년의 몸이라고 하지만 다부져보였다.
군살도 별로 없고 배도 많이 나오지 않았다.
유미에게 그렇게 더럽게 성질만 부리지 않는다면,
꽤 매력적인 로맨스그레이로 봐 줄 만도 하다고 유미는 생각한다.
그는 트렁크 팬티 차림으로 탕 안으로 들어갔다.
아마도 적어도 탕 안에서 반시간은 있겠지.
윤 회장은 눈을 감고 산 쪽으로 몸을 돌렸다.
산의 기운을 받기라도 할듯이 바위와 산봉우리를 바라보며 느긋하게 몸을 뻗었다.
유미가 일어나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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