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9> 변신-12
여자의 집은 지하철역에서 가까운 아파트 단지였다.
30평 정도 되는 아파트에는 맹인이 사는 집답게 별다른 장식은 눈에 띄지 않았다.
여자를 소파에 앉히고 여자가 시키는 대로 냉장고에서 얼음을 꺼내 발목을 감싸주었다.
“일단 이렇게 좀 가라앉혀 주고 괜찮으면 내가 좀 주물러 봐야지.
지금 상태로는 다행히 뼈를 다치진 않았어요.”
여자는 자신의 발목을 만져보더니 의사처럼 말했다.
“아참, 나는 정희라고 해요. 신정희.”
한숨 돌린 여자가 편한 얼굴로 자기소개를 했다.
유미도 자기소개를 했다.
“음, 저는 김지영이라고 해요. 흔한 이름이죠.”
“으음…몇 살? 이리 와 봐요.”
유미가 다가가자 여자는 유미의 손을 만져보더니
얼굴을 더듬고 어깨를 손으로 쓸어보았다.
“서른둘? 맞죠?”
“어머, 어떻게 아세요?”
유미는 일단 여자의 비위를 맞춰 주었다.
“내가 만져 보면 다 알지. 내 동생이랑 동갑이네.
피부결이랑 얼굴 윤곽이랑 뼈랑 만져보니까 꽤나 미인이겠는데?”
“그렇게 봐주다니 고마워요. 앗, 말 잘못했네요. 죄송합니다.”
“뭐가?”
“그렇게 봐주다니란 말, 습관이 돼서….”
“으음 괜찮아. 난 서른일곱이야. 내가 언니네. 언니처럼 생각되면 언니라 불러요.
나도 동생처럼 생각할게.”
“예… 언니. 그럼 언니라 부를게요. 말 놓으세요.”
서른일곱이면 유미와 동갑이다.
“그럴까…?”
정희가 활짝 웃었다.
“네. 그런데 언니는 정말 참 예뻐요. 이런 일 하는 게 아까워요.”
“뭐 앞도 못보는데 이 정도면 괜찮지.
사실 안마시술업소에 나가는 거보다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알음알음
내 방식대로 일하는 게 돈도 되고 몸도 편하고 괜찮아.”
“그 방식이 뭔데요?”
“고객의 상황에 맞게 내가 마사지를 나름대로 처방하지.
내 나름대로의 비법과 노하우를 가지고 말이지.”
“언니, 저도 먹고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그러는데…
그런 일 좀 배웠으면 좋겠어요. 한 수 가르쳐 줘요.”
“아까 만져보니까 골격이랑 윤곽이랑 피부결이랑 살집이랑 딱 미인형이던데,
그런 쪽으로 돈을 좀 벌긴 하겠던데…?”
“언니, 내 나이가 삼십이 넘었어요.
춘향이도 아니고 이제 월매 같은 여자가 그런 바닥에선 아웃이죠.
요즘 노는 날이 많아요. 그리고 그런 일 인제 신물 나요. 때려치울 거예요.”
“하긴… 내 일도 쉬운 건 아니지만, 나이가 좀 더 들어서도 할 수 있긴 하지.”
“그래도 남자를 상대하는 질이 다르다고나 할까요?
이놈 저놈들이 주무르는 거 이젠 정말 싫어. 언니는 언니가 주무르잖아.”
“난 남자를 도와주지. 주로 나이든 남자들이지만.
그걸 자부심이라고 한다면 지나가던 개가 웃겠지만.”
“돈은 많이 받나요?”
“나이든 남자들에겐 돈 좀 받지.
가끔 맘에 드는 젊은 애는 못이기는 척 내가 따먹기도 하고.”
“와우! 너무 멋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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