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2> 떠거운 눈물-7
애리가 동진의 가슴을 주먹으로 콩콩 두들겨댔다.
잠에 빠지지 말고 늦게라도 집으로 들어가는 건데…
동진은 약간의 후회가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대신 옷을 주워 입으며 동진이 말했다.
“어제 약속한 거 잊지 않았지? 아버지한테 미술관 경영에 관심 없다고 해.”
애리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대신에 신부 수업을 하겠다고 할까요?”
“뭐?”
동진이 돌아보자 애리가 혀를 쏙 내밀며 웃었다.
애리가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나 먼저 나갈 테니 천천히 올래?”
“뭐야, 오빠! 날 두고 먼저 간다구?
어떻게 처녀애가 이른 아침에 혼자 호텔을 나오게 할 수 있어요?”
애리가 울듯이 말했다.
“알았어. 빨리 끝내.”
동진은 애리가 샤워를 하는 동안 간단히 양치와 세면을 마쳤다.
머리맡의 핸드폰을 챙기다가 전원을 켰다.
어제 애리와 함께 있을 때 유미의 전화가 와서 전원을 꺼놨던 게 생각났다.
그런데 유미가 그 이후로 세 번이나 전화를 더 했던가 보다.
원래 유미는 이렇게 집착적으로 전화를 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시간을 보니 애리와 한창 그 짓을 했을 시각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전화는 꿈에서 깨어날 무렵이었다.
유미는 본능적으로 어젯밤에 동진이 애리와 만나서 자는 걸 알지 않았을까?
그래서 애리와 섹스할 때 유미가 그렇게 집요하게 떠올랐던 걸까?
하여간 무서운 여자야. 육감(六感)은 여섯 번째의 감각이지만,
성적인 감각이 뛰어난 육감(肉感)적인 여자는 동물적으로 예지력도 뛰어난 게 아닐까.
동진은 가슴이 뜨끔했다.
집에 잠깐 들른 동진은 마침 조간신문을 보던 윤 회장과 조우했다.
윤 회장은 신문 너머로 미묘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돋보기 너머로 윤 회장이 물었다.
“애리와 여태 있다가 오는 거냐?”
“미술관 얘기하느라….”
동진은 아버지의 말에 명확하게 대답하지 않고 제 방으로 향했다.
“걔랑 미술관 얘기를 그렇게 오래 했냐? 어쩌기로 했냐?”
“조찬회의 있어서 빨리 나가봐야 해요. 애리한테 물어보세요.”
방으로 올라가는 동진의 등 뒤에 대고 윤 회장이 말했다.
“결혼하기 전부터 벌써 외박하면 그 집에서 뭐라 그러겠니. ㅉㅉㅉ….”
체면상 아버지가 혀를 차긴 했지만,
왠지 자신을 비난하는 투는 아니라는 걸 동진은 알 수 있었다.
오히려 ‘결혼하기 전부터’라는 말은 이미 두 사람의 결혼을 당연히 전제하고 있지 않은가.
어쩐지 아버지의 수에 걸려든 것 같은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애리는 자신이 조종할 수 있는 인형 아닌가.
동진이 줄을 조종하는 대로 움직일 마리오네트….
출근하고 나서 동진은 유미에게 잠깐 전화를 걸어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아직은 무언가 머릿속에서 정리되지 않은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대신 애리에게서 문자가 날아들었다.
“오빠. 아직까지 오빠랑 함께 있는 거 같아.
언제까지 이 여운이 오래갔으면 좋겠어요.
오빠도 날 떠올리고 있나요?”
의문형으로 온 문자를 씹기가 뭐해 동진은 답장을 보냈다.
“애리는 정말 인형처럼 귀엽고 예뻐. 나도 잊지 못할 밤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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