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유혹

<264> 떠거운 눈물-9

오늘의 쉼터 2015. 4. 3. 17:43

<264> 떠거운 눈물-9 

 

 

 

그런데 노발대발하는 윤 회장의 전화를 동진이 받은 것은 퇴근 무렵이었다.

“도대체 너 뭐하는 자식이냐? 애리한테 전화받았다.”

“아, 예….”

“애리가 미술관 경영엔 관심이 없다고 하더라.

 

그건 걔가 더 원하던 일이었어.

 

하룻밤 새에 걔 맘이 그렇게 바뀌는 거 납득할 수가 없어.

 

너 뭔 짓을 한 거야!”

“아버지도 참. 제가 협박을 했겠어요? 고문을 했겠어요?

 

그건 애리의 의사이니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애리는 그 방면엔 경험도 없고 아무 것도 모르잖아요.

 

얘길 해보니까 자기도 그냥 그 일이 남들에게 멋있어 보이는 거 같아서 하고 싶었답니다.

 

참! 걘 아직 너무 어리더라구요.”

“너 그 오 실장 비호하느라 그런 거 아니냐.”

“오 실장, 잘하고 있잖아요. 해외 경험도 있고요.

 

이번에 아닌 게 아니라 해외미술품 수집 쪽으로 일을 맡기려고….”

그때 윤 회장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정신 차려라, 이놈아. 너 좀 컸다고 이제 애비가 손을 안 대니까

 

네가 애빌 완전히 무시해?”

동진이 입을 다물었다.

“이 애비 아직 안 죽었다.

 

그 애는 절대 안 된다.

 

우리 집안의 며느리로도 안 되지만,

 

일로도 안 돼.

 

난 그 애가 우리 근처에 얼쩡대는 거 싫다.”

“아버지. 며느릿감으로는 마음에 안 드셔도 오 실장은 능력 있는 여자입니다.

 

그건 다른 사람들도 다 인정하는 거….”

동진이 용기를 내어 말을 꺼냈는데 윤회장이 말을 잘랐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너 그 애랑 끊지 않으면 부자지간의 인연도 절연하는 거다, 알았냐?”

동진은 속에서 분노가 확 일었으나 눈을 감고 눌러 참았다.


“너 오늘부터는 그 애랑 따로 만나지 말아라.

 

네 기사와 비서진을 교체하겠다.

 

몰래 만날 생각은 말아라.”

“아버지, 도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저도 이제 사십이 내일 모레입니다.

 

왜 그렇게 오유미라면….”

“왜냐고? 일 끝나고 바로 집으로 오너라.”

“저녁 약속 있어요.”

“공식적인 약속은 취소한 거 다 안다.”

아버지의 곤조가 드디어 나오기 시작하는구나.

 

동진은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잔말 말고 내가 하라는 대로 그대로 따르거라.”

윤 회장이 전화를 끊었다.

 

독재자! 동진은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떨다가 그대로 책상을 내리쳤다.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언젠가부터 끊은 담배 생각이 났다.

 

동진은 그대로 의자에 파묻혀 눈을 감았다.

 

동진은 아버지를 이길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화가 나기보다는 오히려 절망스러웠다.

어릴 때 생각이 났다.

 

아버지는 비상한 머리를 갖고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런 사람답지 않게 거칠고 고집불통인 데가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강하게 커야 한다고 늘 말했다.

 

자식들과의 문제도 대화로 풀어나가기보다는 힘으로 꺾어 눌렀다.

 

특히나 형에 비해 섬약한 동진을 무척 못마땅해했다.

 

어릴 때부터 울거나 조금이라도 약한 모습을 보일라치면,

 

걸핏하면 계집애 같은 놈, 사내 구실 못할 놈이라며 손찌검을 했다.

 

손찌검뿐 아니라 사안에 따라서는 매로도 맞고 몽둥이로도 맞고 골프채로도 맞았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그랬다.

 

그런 공포 속에서 동진은 고통을 쾌락으로 바꾸는 자신만의 방법을 터득했는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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