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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8. 미끼-(11)

오늘의 쉼터 2015. 4. 3. 17:11

248. 미끼-(11)

 

 

 

 

 

 

 유미는 콧방귀가 터져 나오는 걸 간신히 참았다.

 

운명이니 이런 말로 옭아매려는 남자는 딱 질색이다.

“유미씨를 처음 본 순간에 대해 내가 말 안 했던가요?”

“됐어요.”

“우리 끝까지 함께 가요.”

“어딜요?”

“천국까지, 지옥까지. 난 유미씨 안 놓쳐요.”

“날 알면 도망갈지도 모르는데?”

“글쎄요. 그럴까요?”

“암튼 내일은 안 돼요. 그리고 난 개가 아니에요.

 

개줄을 잡듯이 나를 바짝 옭아매지 말아요.”

유미는 전화를 끊었다.

 

아예 전원을 꺼버리고 침대에 벌렁 누웠다.

 

어쩌면 이 남자는 이다지도 그를 닮았단 말인가.

 

유미는 이유진을 떠올렸다.

 

고수익에게 끌렸던 건 이유진의 미소를 떠올리게 하는 살인미소였다.

 

그리 튀진 않으나 나름대로 유머감각이 있는 것도 비슷하고

 

가끔 귀엽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비슷하다.

 

물론 이유진이 고수익보다 훨씬 더 상큼하긴 했다.

 

아마도 당시 그의 나이 때문일 것이다.

 

유미 또한 당시엔 20대였다.

 

어린 나이에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는 하지만 낭만의 도시 파리에서 만난 두 사람은

 

인생에서 최고의 낭만주의 시대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순수하고 진지한 관계의 종말이 어떠했던가.

다음 날 유미는 마트에 들러 싱싱한 고등어를 사다가 묵은지를 넣고 지졌다.

 

마침 묵은지를 전문으로 음식을 만드는 식당에서 묵은지를 팔았다.

 

이런 음식은 참 오랜만에 했다.

 

조두식은 생선을 좋아했다.

 

특히 매운탕이나 조림을 좋아해서 이모네 식당의 음식을 좋아했다.

 

그러고 보니 엄마나 이모는 솜씨가 좋았다.

 

이모는 카운터를 보고 엄마는 홀서빙을 했는데,

 

주방에서 매운탕의 양념장이나 음식의 간은 엄마가 꼭 확인했다.

 

그만큼 엄마의 솜씨가 좋았다는 얘긴데,

 

유미는 요리엔 관심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웬일로 요즘 이렇게 음식을 할 일이 자꾸 생기나.

 

남자를 요리하는 데는 요리가 가장 잘 먹히는 걸까?

 

특히 기운 떨어진 나이 든 남자는 섹스의 추억은 짧고,

 

추억의 입맛은 더 질긴가 보다.

 

시간에 맞춰 조두식이 방문했다.

 

조두식은 귀를 가린 장발은 여전했지만,

 

넥타이만 매지 않았을 뿐, 양복을 걸치고 있었다.

“으음… 냄새 죽인다. 얼른 먹자.”

그가 들어서자마자 코를 킁킁댔다.

 

유미는 끓고 있는 찌개를 식탁에 올리고 밥을 푸고 소주를 반주로 내왔다.

 

조두식의 잔에 술을 따르고 제 잔에도 따랐다.

 

건배를 하고 그가 허겁지겁 밥을 먹기 시작했다.

“맛이 별로 없을 텐데….”

“아니다. 끝내 준다. 네 엄마만큼은 아니라도.

 

사먹는 밥은 어째 살로 안 가는 거 같아.”

유미는 참으로 오랜만에 그의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희끗희끗 흰머리가 섞인 장발을 보니 예전의 팔팔했던 그가 겹쳐 떠올랐다.

 

끔찍하게도 싫어했던 사람인데…

 

그런데 이 사람뿐 아니라 나도 나이 먹나 봐.

 

이상하게 한때 ‘집밥’을 함께 먹던 이 사람이 왠지 측은하게 여겨지네.

 

그러다 유미는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야….

“이렇게 너와 마주하고 앉았으니 네 엄마와 있는 거 같구나.

 

너, 나이 들수록 네 엄마 닮아가는 거 아니?”

“그래요?”

“네 엄마 예뻤지. 요즘 따라 네 엄마가 많이 보고 싶어. 내가 참 못되게 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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