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미끼-3
수익과의 대화는 왠지 즐겁다.
어떤 조건도 걸지 않은 순수한 만남이라 그럴까.
만남 자체가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청순한 10대의 순수한 만남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조건 없이 그저 우연히 만나 눈이 맞고 배가 맞은 그것보다
더 순수한 만남이 어디 있겠는가.
그동안 그가 어떤 인간인지 분석하지 않고 계산하지 않고 만나왔다.
물론 그럴 필요가 있다면 그래야 할 것이다.
이상하게 그의 미소는 유미를 무장해제시키는 무언가가 있다.
현재로서는 이 만남이 유미의 숨통이라 할 수 있다.
수익은 산소 같은 남자라 할 수 있다.
유미는 그저 그대로 당분간 이 관계를 순수하게 유지하고 싶다.
윤동진만 해도 이렇게 복잡하지 않은가.
어쩔 수 없는 세속의 욕망으로 윤동진이라는 사다리를 올라타려니 다리가 휘청거린다.
게다가 위에서 사다리를 쥐어 흔드는 방해꾼인 윤 회장 때문에 자칫하면 실족사할 수도 있다.
텔레파시가 통했나? 그 순간, 윤동진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
“아직 안 자요. 뭐 해요?”
“으음, 여기 현지 법인 임원들하고 만찬을 하고 방금 들어왔어.”
“일은 잘 돼가요? 중국 출장이 요즘 따라 잦네요.”
“국내 경기가 너무 안 좋은데 그나마 여기서라도 분투해야지.”
“참, 아버님은 어떠세요? 아직도 완고하게….”
“으음… 그게….”
“나에 대해 뭐라고 하시던가요?”
윤동진이 머뭇거렸다.
“선입견이 많은 양반이라….”
“그럼, 그분은 도대체 어떤 걸 좋아하세요? 그렇게 귀족적인가요?”
“귀족적인 것과는 달라.
생활습관은 얼마나 소박하고 또 근검절약하시는데.
술도 막걸리에 소주파지.
요즘도 비 오는 날이면 꼭 막걸리에 빈대떡이나 파전을 지져 드시거든.
아마도 젊었을 때 식성이 그리운 걸 거야.”
“젊을 때 식성?”
“사실 우리 아버지는 자수성가하신 분이거든.
미래를 예견하는 비전과 건설현장에서 몸소 겪으신 노하우와 건설붐을 탄 분위기가
YB건설을 만든 거지.”
YB그룹은 YB건설이 모회사다.
불과 40년도 안 되는 기간에 국내 건설업체 도급 순위 10위권 내에 드는 탄탄한 기업이다.
동진이 말하는 미래를 예견하는 비전이라는 게 70년대 땅 투기를 말하는 것이리라.
들리는 말로는, 요즘 건설경기가 바닥을 치는 데도 YB그룹이 건재하는 이유로
윤 회장이 소유하고 있는 땅이 많기 때문이라 한다.
동진이 자세하게 말을 안 해도 유미는 비 오는 날의 함바집 풍경 같은 게 떠올랐다.
그런 날이면 일꾼들이 모여 파전에 막걸리를 추렴하곤 했다.
엄마가 이모와 싸워서 이모네 횟집을 나와 부산의 아파트 현장에서
함바집을 잠시 차린 적이 있었다.
“그런 분이 왜…?”
“으음, 그건 자신은 그 고생을 하고 성공했지만,
아들에게만은 그걸 물려주고 싶지 않은 거겠지.
난 그걸 부성애라 생각해. 아버지도 어려운 사람들 많이 도와주셔.
하지만 자신의 아주 가까운 며느리로는 그런 쪽과 먼 여자를 고르고 싶은 거야.
그 시절의 음식은 그리워서 가끔 먹지만, 혈연으로 이어질 가족관계는 그게 아니니까.
일종의 가족이기주의지만 인간적인 욕망 아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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