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8)미끼-1
유미는 고민에 빠졌다.
재개관날, 윤 회장에게서 만날 약속을 받아냈는데,
지금쯤은 연락을 해야 할 시기인 것 같았다.
마침 윤동진도 며칠 해외출장을 떠났다.
이 영감을 어떻게 구워삶는다? 김 교수나 배 이사장과는 다르다.
그들이 윤 회장과 비슷한 연배라 할지라도,
그들은 그래도 수동 기어 스틱이 달린 사내들 아닌가.
어쨌거나 베스트 드라이버 여기사가 그쯤이야 운전을 못하겠는가.
다만 연식이 오래된 차종들은 성능 면에서 언제 어떻게 속을 썩일지 모르니
그리 내키지 않을 뿐이다.
그런데 시아버지 자리를 두고 예비 며느리가 그렇게 접근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그 괴팍한 영감,
왜 그리 오유미를 싫어하는 거야?
내가 강애리보다 못한 게 뭐가 있어?
꿀리는 건 돈 많은 아버지가 없다는 거다.
나이가 좀 많긴 하지만, 제 아들인 윤동진과 엇비슷한데다
연륜이 주는 우아한 성숙미는 그 눈에 안 보이나?
게다가 제 아들이 그렇게 죽고 못 산다는데.
이 김에 윤동진이 변태라는 걸 확 까발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비겁하다.
짚신도 짝이 있다는 게 바로 결혼이다.
하긴 어떤 짝도 윤동진에게 들이대면 짝짝이가 된다는 걸 그 영감이 알 리가 없지.
어쨌든 유미는 윤 회장의 개인 번호로 전화를 걸기로 했다.
신호가 한참 간 후에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다.
“누구시오?”
“여보세요? 혹시 윤규섭 회장님 전화 맞나요?”
“그렇소.”
“아! 안녕하세요, 회장님. 저 미술관의 오유미 실장입니다.”
“그런데…?”
“네? 미술관 재개관날, 제가 한번 만나 뵙고 싶다니까 이 번호로 전화하라 그러셔서….”
“그랬지.”
아직 네 음절 이상은 뱉지 않는 무뚝뚝한 그의 반응에 유미는 잠깐 할 말을 잃었다.
“기억나시죠?”
“그래, 기억나요.”
휴우, 여섯 음절이다.
“약속 장소와 시간을 말씀해 주시겠어요?”
“…….”
이번에는 아예 묵묵부답이다.
“제가 회장님 방으로 찾아뵐까요?”
“그럴 필요없어.”
“네?”
약속을 거절하겠다는 건가?
“사적인 일로 만나는데 회장실로 오는 건 별로 안 내켜.”
“그럼, 카페나 레스토랑, 호텔 커피숍이나….”
“그런 데서 잡놈들과 뒤섞여 쑥덕대는 건 더 싫고.”
사람들 눈을 피하는 건가? 어쩌자는 거야?
“그럼, 제가 집으로 찾아뵐…?”
“아랫사람들 눈에 띄어 좋을 게 뭔가.”
“…….”
“자네 집은 어떤가?”
“네…?”
“자네 집에서 차나 한잔 마시지.”
집에서? 하지만 망설일 틈이 없이 유미는 대답했다.
“좋습니다.”
“내일 저녁 8시에 가겠네.”
“예, 알겠습니다. 집주소는요….”
“찾아가겠네.”
“예, 그럼 이만….”
전화를 끊으려는데 윤 회장이 여태 했던 말 중에 가장 긴 말을 내뱉었다.
“자네도 알겠지만, 이건 동진이도 모르는 우리 둘만의 약속이니 보안에 신경 써야 하네.”
“물론이죠. 잘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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