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우정과 애정-1
미술관 일도 예정대로 잘 돌아가고 오랜만에 단꿈 같은 평화로운 나날이 흘렀다.
그러나 원래 단꿈은 일찍 깨는 법. 점심시간이 되어 유미는 아직 출국하지 않고
서울에 머무르고 있는 프랑스 화가 위베르와 오늘은 식사를 할까,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폴의 친구이며 유명화가다.
재개관전 이후로 새 전시회 준비를 해야 하는데 그와 화풍이 비슷한 김 교수와
듀오 전시회를 열 계획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지완이 미술관으로 찾아왔다.
“어머, 지완아. 웬일이야? 나 보러 온 거니?”
지완을 본 유미는 얼결에 용준을 쳐다보았으나 웬일인지 두 사람은 모른 척했다.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
하긴 그동안 하도 바빠서 지완이나 용준과 사적인 얘기를 할 틈도 없었다.
지완의 얼굴은 몹시 불안해 보였다.
“미술관 개관했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한번 와보고 싶었어. 한데 하도 정신이 없어서….”
“왜 무슨 일 있었어?”
“점심 같이 먹자.”
“미리 전화나 하고 오지.”
“미안… 많이 바빠? 어쩔 수 없었어. 선약 있더라도 좀 깨라.”
유미가 용준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같이 델꼬 가? 지완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너한테 긴히 할 얘기가 있어서 왔어.”
그러고 보니 지완의 얼굴은 많이 상해 있었다.
“좀 조용한 데로 가자.”
“그래. 알았어.”
유미는 지완을 데리고 근처 일식집의 룸으로 갔다.
지완은 주문한 음식을 먹는 둥 마는 둥하며 말을 아꼈다.
유미는 혹시 지완이 뭔가를 눈치챈 건 아닌가,
하는 일말의 불안감을 느끼며 물었다.
“왜 무슨 일인데?”
“사는 게 왜 이리 힘드니?”
“원래 인생이 그렇지 뭐. 오르막길 있으면 내리막도 있고. 넌 그동안 탄탄대로였잖아”
“요즘엔 너가 정말 부러워.”
지완이 유미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얘는 내 팔자가 뭐가 좋다고…. 난 예전부터 너가 부러웠는데.”
지완이 초밥 하나를 젓가락으로 이리저리 굴리더니 겨우 입을 뗐다.
“인규씨가….”
유미가 불안하게 물었다.
“인규씨가 왜…?”
“미쳤나봐.”
“그래, 좀 이상해졌다며?”
“아주 비열하게 매달리고 있어. 난 정말 만정이 다 떨어졌어.”
“그래도 미운 정 고운 정 오래 든 남편 아니니. 좀 불쌍하기도 하다.”
“그래, 인간적으로 그렇기도 해. 하지만….”
지완이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말을 꺼냈다.
“이혼을 결심하고 나니까 이제 그 사람과 인연이 다 끊어진 거 같더라.
내가 그 사람한테 서류 준비해놨다고 이혼해달라고 통보했었어.
그랬더니 이 남자가 나한테 협박하는 거야.
아이들과 동반자살 해버리겠다고.
아이들 학교로 몰래 가서 아이들 친정집에 빼돌려 놨어.
그랬더니 밤마다 술 먹고 나한테 전화해.”
“뭐라고 하는데?”
“횡설수설이야. 애원했다가 날 죽이겠다고 협박도 했다가…. 정말 이 인간 미쳤어.”
“설마….”
“지난 번엔 찾아와서 자기가 사람을 죽였다며 울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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