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좁은문-16
유미는 동진에게 그날 강애리의 통화를 엿들었다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요. 난 육감이 뛰어나요. 특히나 사랑하는 사람의 신변은 훤히 보이는 경우가 있어요.
그날이 그랬어요. 그래서 괴로웠구요.”
동진이 그 말을 믿는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매를 벌지 말아야겠군. 그래. 그날 밤, 그 여자랑 잤어.”
“에잇, 이 탐관오리보다 더 나쁜 놈!”
유미가 저도 모르게 손을 올리자 동진이 피하지 않고 말했다.
“그래. 날 때려줘. 어서! 당신 지금 얼굴이 얼마나 섹시한 줄 알아?”
이런, 또 노예 근성이 나오는구나. 유미는 들어올린 손으로 에라, 모르겠다,
동진의 얼굴을 세게 때렸다. 동진의 얼굴이 흥분으로 들떴다.
동진이 유미의 얼굴에 키스하며 말했다.
“당신이 정말 그리웠어.
나를 이해해주고 나를 나대로 사랑해 줄 사람은 오유미밖에 없어.”
유미가 동진을 밀쳐냈다.
“당신에게 도대체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어요.”
“당신은 물처럼 공기처럼 내게 편안한 여자지.”
“정말 날 물로 보지 말아요. 비슷한 신분의 여자와 온갖 좋은 척 다하다가,
배설할 때나 찾게 되는, 나 창녀 같은 여자 아니에요.”
동진이 유미의 어깨를 낚아채며 말했다.
“아냐. 그 여자와 좋지 않았어. 어느 누구와도 좋지 않았어.
아무리 내가 여러 이유로 당신을 내치려고 해도 결국에는 내 몸이 당신을 그리워해.”
동진이 유미를 안았다.
“그 여자와는 재미없었어.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한다면 도망가야겠구나 하는 생각만 들었어.
당신과 함께 했던 알콩달콩한 놀이들이 그리웠어.”
그랬겠지. 애리 같은 여자는 동진의 취향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세상 대부분의 여자들은 동진 같은 남자를 변태라고 부르겠지.
유미 또한 그의 취향과 맞는 것은 아니지만, 그에게 맞춰줄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평생을 동진과만 섹스하라고 한다면 얼마 못가 지쳐버릴 것 같다.
“당신에게 일부러 잔인하게 군 거 미안해. 나를 때려. 세게 때려 줘.”
동진이 아이처럼 보챘다.
그 모습을 보자 정말 동진이 어린 아들이나 되는 것처럼 안쓰러워 보였다.
유미가 동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오유미, 제발 그런 표정 짓지 마. 내가 맡겨놓은 서류가방 어디 있지?”
한때 동진과 즐길 때 동진은 각종 도구가 든 가방을 유미의 집에 맡겨놓았다.
하긴 그 짓을 한 지도 꽤 오래되었다. 맞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한가 보다.
“침대로 가서 벗고 얌전히 누워 있어요.”
유미가 명령하듯이 말하자 동진은 얼른 침실로 들어갔다.
유미는 거실의 서류장 속에 들어있는 가방을 찾아냈다.
가방을 급히 들고 나가면서 엄마의 유품을 넣어놓았던 쇼핑백이 넘어지면서
내용물이 쏟아져 나왔다. 그것도 모르고 유미는 얼른 가방을 들고 욕실로 들어갔다.
대충 샤워를 하고 욕실 장 속에서 가면을 찾아 꺼내 썼다.
인규와 함께 베네치아에서 샀던 귀부인 가면이었다.
그리고 신발장으로 가서 하이힐을 꺼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에 12센티짜리 킬힐을 신고 서류가방을 들고
유미는 침실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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