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좁은문-14
“오늘 밤 무슨 일로요? 근무시간도 끝났는데.”
유미는 동진을 상사로만 취급하겠다는 뜻을 에둘러 표현했다.
“당신과 나 사이에 그런 일만 있는 건 아니잖아.”
유미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알았어요.”
“아홉시 반까지 집으로 와.”
“블루문에서 봐요.”
“나 거기 싫어. 물먹었던 데잖아.”
그러고 보니 그곳에서 유미가 취해서 그의 얼굴에 물을 끼얹었던 곳이었다.
“우리 처음 만났던 호텔 바에서 볼까?”
“저 거기 싫어요. 뺨 맞은 데잖아요.”
유미도 지지 않고 말했다.
“그럼 우리 집 앞에서 아홉시 반에 봐요.”
유미는 식당으로 돌아와 은근한 기대를 감추고 있는 수익에게 말했다.
“수익씨, 미안. 갑자기 집에 손님이 오셔서 가 봐야 해요.”
“집으로 손님이…오?”
유미는 아차, 싶었다.
이 밤에 집으로 손님이 온다는 게 좀 이상하지 않나?
“으응, 사촌이 지방에서 갑자기 서울 올라왔다는데
오늘밤 우리 집에서 재워줘야 할 거 같아서….”
수익의 얼굴에 실망의 빛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는 금방 표정관리를 했다.
“알았어요. 이번에 한 번 저한테 빚진 거예요.”
“알았어요. 그 대신 식사 계산 내가 했어요. 덕분에 오늘 배부르게 잘 먹었어.”
아쉬운 얼굴로 수익이 유미를 바라보았다.
유미는 서둘러 핸드백을 메고 수익과 헤어졌다.
아파트 단지로 들어와 차를 세우는데 마침 모범택시 한 대가 들어왔다.
거기서 동진이 내렸다.
유미는 비상등을 깜빡거렸다.
동진이 알아보고 유미의 차로 다가왔다.
“타세요.”
동진은 잠시 망설이다 차에 올라탔다.
“기사를 보내고 오느라….”
유미와 공식적인 연인 관계가 아니니
기사 눈치를 보는 건 당연했지만 유미는 좀 섭섭했다.
“기사 여기 있잖아요. 어디로 모실까요?”
“집으로 가지. 남들 눈도 있고, 집이 편하잖아?”
“왜 사진 찍힐까 봐요?”
“사진은 무슨….”
“쇤네 집이 워낙 누추해서….”
“오늘 왜 이렇게 삐딱해?”
“그죠? 이상하게 자꾸 배배 꼬이네요. 꽈배기처럼.”
“집에 술 있지? 술 한잔 하면서 풀자.”
집에 술이라면 마시다 만 양주가 한 병 있을 뿐이다.
인규와 한창 사이가 좋을 때는 집에 포도주가 끊이지 않았는데….
“마시다 만 발렌타인이 있긴 한데. 술 사올까요?”
“아니, 그거면 됐어.”
유미는 동진과 함께 집으로 들어섰다.
동진을 앉혀놓고 발렌타인과 잔을 찾아 꺼내고 얼음을 준비하려는데 그가 말렸다.
“그냥 스트레이트로 한두 잔 할 거야. 안주도 필요 없어. 이리 앉아 봐.”
술을 마시고 싶어서가 아니라 하기 힘든 말을 하려는데 윤활유가 필요한 것이다.
유미는 그렇게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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