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좁은문-11
“나 너무 추워요. 성냥팔이 소녀처럼….”
“오 불쌍해라. 성냥팔이 소녀라… 가진 건 성냥밖에 없는데 아무도 성냥을 사주진 않죠.
그래서 소녀는 남은 성냥을 하나씩 켜면서 따스한 환상을 보죠.”
“그래요. 그건 동화고. 한때는 너무 화가 나서 가진 성냥으로 온 세상을 싹 불질러 버리고
싶은 생각이 많았어요.”
“그건 성냥팔이 소녀가 아니라 무시무시한 또라이 방화범인데…유미씨가 설마….”
“한때 그런 심정으로 살았다고요.
내가 가진 건 성냥밖에 없었어요.
잠깐 불을 밝혀 순간적으로 따스해지지만,
자꾸 성냥을 켜다보면 언젠가는 성냥은 동이 나고 아무것도 남지 않고 더 추워지죠.
결국 성냥팔이 소녀는 얼어죽은 채 발견되잖아요.
내게 성냥이란 뭐냐면…으음….”
유미는 말을 멈췄다.
자신에게 성냥이란, 남보다 더 뜨거운 몸이었다.
한마디로 성능 좋은 내연(內燃) 기관을 타고난 덕에 뜨거운 몸을 불사르며 버텨온 인생이었다.
그러나 유미의 그 성냥은 언젠가는 고갈될 것이다.
한때는 그 성냥을 아무 곳이나 아무 때나 그으며 추위와 배고픔을 이긴 적이 있었다.
성냥팔이 소녀처럼 성냥을 하나씩 그어대며 하루하루를 버틴 과거가 가슴 아프게 떠오르자
유미는 더 이상 말을 하기 싫었다.
하지만 어쩌면 지금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어쩌면 유미가 지금 욕망하고 있는 것들은 성냥팔이 소녀의 환상 같은 게 아닐까?
그건 유미의 환상이지 유미에게 다가올 현실은 아닐지 모른다.
어쩌면 환상에서 깨어난 유미는 자신이 걸친 옷가지를 태운 잿더미를 보아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성냥팔이 소녀는 행복했을 거예요.”
수익이 말이 없는 유미를 바라보며 안심시키 듯 말했다.
“환상 속에서 죽어갔다면 말이죠. 그 소녀는 얼어죽은 채 발견됐지만,
그 소녀가 환상 속에서 얼마나 행복했는지는 아무도 모르잖아요.”
“그렇게 환상 속에서 영원히 깨지 않고 죽는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그건 동화잖아요. 인생이 어디 그래요? 그리고 인간이 어디 그렇게 단순해요?
늘 회의하는 동물이잖아요. 그게 문제지.”
“내가 당신의 난로가 되어줄게요. 그럼 됐죠?”
수익이 유미를 다시 품안 가득 안았다.
그래도 마음이 추운 건 어쩔 수 없을걸.
유미는 그 말이 맴돌았지만 수익의 품을 파고들었다.
타인의 체온이 합쳐져 73도가 넘으면 오죽 따끈하랴만,
그래도 뜨거운 몸을 안고 있을 때만큼은 마음이 포근해졌다.
“나 나쁜 여자예요.”
유미는 순진한 외모의 수익에게 고백하는 심정으로 그렇게 말해 보았다.
그 말의 뜻을 짐작이나 하는지 수익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요. 끔찍한 방화범일 수 있다는 거….”
유미가 뜨거운 입김을 그의 귀에 훅 불어넣었다.
“이미 불 질렀는데…안 뜨거워요?”
“어잇! 벌써 나 홀랑 다 탔는걸요.”
“ㅋㅋ… 그럼 잘 익었을 때 먹어야지.”
유미가 그의 심벌을 뜨거운 듯 살짝 손에 쥐었다.
'소설방 > 유혹' 카테고리의 다른 글
(220)좁은문-13 (0) | 2015.04.02 |
---|---|
(219)좁은문-12 (0) | 2015.04.02 |
(217)좁은문-10 (0) | 2015.04.02 |
(216)좁은문-9 (0) | 2015.04.02 |
(215)좁은문-8 (0) | 2015.04.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