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유혹

(214)좁은문-7

오늘의 쉼터 2015. 4. 2. 00:23

(214)좁은문-7

 

 

 

 

 유미가 놀라 물었다.

“내 과거가?”

“예, 과거가….”

“어떤 과거?”

“구체적으로 떠오르기보다는… 으음. 상당히 아픔을 겪었어요.

 

온갖 고통과 내면의 번뇌, 그리고 재물의 고통,

 

그 속을 인간이 가진 오욕칠정을 너무나 풍부하게 타고난 몸과 마음으로 통과하다 보니

 

영혼이 많이 상했어요.”

유미는 운전을 하면서도 수익의 얼굴을 보았다. 가슴이 뜨끔거리는 부분이 없지 않다.

 

동자승처럼 해맑은 얼굴로 처연하게 저런 말을 하는 그가 좀 섬뜩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제게는 유미씨의 그런 기운이 느껴졌어요.

 

유미씨를 보는 순간, 가슴이 싸하게 아파서 돌아설 수가 없었어요.

 

눈물이 날 것처럼 코끝이 매워지고, 그저 아, 이 사람, 그냥 꼭 안아 주고 싶다,

 

그런 생각만 들었어요.”

유미가 일부러 농담하듯 툭 던졌다.

“작업하는 방식도 여러 가지네요.”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죠.

 

어떤 식으로 말해도 좋아요.

 

헤어지며 돌아서는 뒷모습을 보는데 왜 그렇게 애틋한지…

 

저 아름다운 몸과 여린 영혼으로 겪어 냈을 세상의 극심한 고통이 제 가슴으로 느껴졌어요.

 

이상하죠? 그래서 그 짧은 순간 눈앞의 가게로 달려가 향로와 향을 사서 갔던 거예요.”

어떻게 보면 유치한 고백일 수도 있지만, 수익의 고백은 진심 어린 데가 있었다.

 

그것이 유미에게도 느껴졌다.

 

어쩌면 정효스님이 유미에게 가진 연민지심과 비슷할 수도 있지만,

 

수익은 수도자가 아닌 욕망을 가진 중생이다.

 

그것이 다르다.

 

원하면 당장 그와 얼마든지 몸을 섞고 위로를 받고 욕망을 충족할 수 있다.

 

어쩌면 사랑할 수도 있다.

 

유미는 눈앞의 그런 가능성에 가슴이 설??다.

 

분명히 가슴이 잔물결이 일듯 설레는 걸 느낀다.

 

유미는 그걸 좀 더 느끼고 싶어서 한적한 골목길로 들어가 차를 세웠다.

 

핸들을 쥐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이게 무언가의 시작이라면… 시작해도 되는 걸까?

 

하지만 더 이상 상황을 복잡하게 할 필요가 있을까?

 

어쩌면 오늘 밤 윤동진을 독점할 강애리의 얼굴이 떠올랐지만,

 

윤동진에 대한 어긋난 감정 때문에 이러는 것은 분명 아니다.

 

그저 하룻밤 허전한 마음을 달래려는 원나잇 스탠드?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유미는 자신의 심장에서 울리는 북소리 같은 신호가 무엇을 뜻하는지 눈을 감고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가슴속에서 울린 메시지는… 사랑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신의 뜻을 전해 들은 무당처럼 유미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가벼운 한숨을 흘리고 있었다.

 

한숨인지, 가슴속에 눌린 신음인지,

 

유미의 숨소리를 듣자 수익의 손길이 유미의 머리칼을 만졌다.

 

유미가 살포시 감은 눈을 떴다.

 

그의 웃는 듯, 우는 듯한 진지한 표정이 잠깐 스쳤다고 생각한 순간,

 

그의 뜨거운 입술이 유미의 입술에 낙인처럼 찍혔다.

 

유미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입술을 받았다.

 

두 사람의 손이 서로의 머리통을 꽉 껴안고는 격렬하게 입을 맞추었다.

 

이빨이 부딪치고 코가 제멋대로 눌렸지만, 온몸이 부르르 떨리는 키스였다.

 

자동차가 들썩이고 클랙슨이 눌려 소리가 났다.

 

그러나 뜨거운 입술과 혀의 감각 이외에 주위의 모든 것들은 그림 속의 여백에 불과했다.

 

수익도 불 맞은 돼지처럼 유미를 놓아주지 않았다.

 

유미는 숨이 가빠 심장이 터져 버릴 거 같았다.

 

폭탄을 안고 있는 것처럼 두 사람은 조급해졌다.

 

두 사람이 폭발하든지 차가 폭발할 거 같았다.

“잠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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