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유혹

(207)숨은 그림 찾기-16

오늘의 쉼터 2015. 3. 31. 14:45

(207)숨은 그림 찾기-16 

 

 

 

 

 

그게 텔레파시로 통했는지 고수익도 가쁜 숨을 쉬다 잠시 가만히 있었다.

 

그가 살짝 감정 정리를 하고는 다시 농담조로 말했다.

“구미호보다는 섹시하네요. 아아, 꽃뱀파이어에게 한번 물려 보고 싶어요.

 

제 피가 아주 달거든요. 모기 같은 잡것들이 엄청 좋아하는데.”

“그래요? 한번 빨아 주죠.”

고수익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 이쁜 입으로 그 말을 하니까 온몸이 오그라들 정도로 자극적이네요.”

“어머, 말해 놓고 나니 말이 엄청 웃기네.”

“유미씨, 이렇게 말하면 좀 저렴하게 들리겠지만, 처음 본 순간부터 이성을 잃었어요.

 

그래서 나도 모르게 화랑에서 나와 정신없이 유미씨 뒤를 쫓았던 거죠.

 

오늘도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어요.

 

만난 이후로 매일 밤마다 향을 피우고 기도를 했어요.

 

참! 향 피워 봤어요? 좋죠? 마음이 가라앉죠?”

“예, 좋던데요.”

“시간 되면 정말 한번 만나요.”

“그러게요. 저녁도 얻어먹고 선물도 받았는데….

 

제가 웬수를 한번 갚긴 갚아야 하는데…. 그림 보러 꼭 나오세요. 그럼 잘 자요.”

“예, 그럴게요. 유미씨도 잘 자요.”

전화를 끊고 나자 나른해졌다. 취기가 도는 탓도 있지만,

 

무언가 아슴하게 시작되는 느낌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이 느낌은 낯설고도 익숙했다. 유미는 이 느낌을 안다.

 

그것은 사랑이 시작되는 느낌이었다. 아니, 사랑이라니,

 

유미야. 이렇게 쉽게? 이런 느낌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윤동진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를 만났을 때도 이런 느낌은 아니었다.

 

어느 누구도… 아니었다. 이 느낌은 어쩌면 그리움인지도 모른다.

 

갑자기 이유진의 얼굴이 떠올랐다.

 

유미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움이라니, 유미야. 굳이 말하자면 기괴한 그리움이었다.

 

가끔이라도 기억 속에 떠오를까 봐 두려워서 무조건 가슴속에 꼭꼭 묻은 얼굴이었다.

 

그러나 그가 살아 있다면 보고 싶었다.

 

그때 현관 문이 갑자기 열렸다.

“아직 안 자니? 장맛비가 심하게 온다.”

수민이었다.

“비 많이 와? 웬일이야, 오늘은 일찍 오네.”

“내가 얘기했잖아. 오늘 쉰다고. 참 근데 현관 문에 이게 끼어 있다.”

“뭐야? 편지야?”

유미가 수민이 건네준 봉투를 열었다.

 

그것은 컴퓨터로 출력한 편지였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기억하겠죠? 10년 전, 이날,

 

이 세상에서 처음 만났던 남자를 당신은 잊지 않았겠지요.

 

사랑은 영원합니다. 안녕히….’

유미는 술이 확 깼다. 10년 전 오늘이라면…. 이유진을 처음 만났던 날이다.

“유미야, 왜 그래? 뭔데?”

수민이 창백해진 유미를 보며 물었다.

“아냐. 그런데 혹시 누구 못 봤어?”

“누구? 가만 있자…. 아파트 현관 앞에서 서성거리는 남자가 있긴 했는데

 

우산을 쓰고 있어서 얼굴은 자세히 못 봤어.

 

지금 생각하니까 날 보더니 휙 달아나는 느낌이었어.”

이건 뭐지? 이유진과의 일을 알고 있는 누군가가 악의적으로 유미를 괴롭히고 있다.

 

눈앞이 흐려졌다.

 

유미는 편지 내용 이외에는 어떤 정보나 단서도 없는 편지지를 하염없이 들여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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