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유혹

(204)숨은 그림 찾기-13

오늘의 쉼터 2015. 3. 31. 14:38

(204)숨은 그림 찾기-13 

 

 

 

 

 

윤동진이었다.

 

어쩔까 하다가 전화를 받았다.

 

윤동진이 딱딱한 목소리로 다짜고짜 물었다.

“사직서 제출했다고?”

“네.”

“어쩔 생각으로?”

“모든 신뢰가 무너진 마당에 저한테 뭘 맡기겠어요?”

“아무리 경박한 여자라도 공과 사는 분명히 해 줬으면 좋겠어. 그렇게 책임감이 없어?

 

아니, 좀 악의적이군. 재개관까지는 책임을 다해 줘야 할 거 아니야.”

“지쳤어요.”

유미가 한숨을 쉬었다. 어젯밤의 수모가 다시 떠올랐다.

“너무 힘들어요.”

“사표 수리하지 않겠어. 미술관부터 가동시켜 놓고 그때 다시 얘기해.”

“내 감정은 생각도 안 해요?”

“내가 오유미를 영입했던 건 능력을 본 거지 여자로서는 아니었어.

 

미술관은 별개의 문제야. 일을 볼모로 사랑싸움이나 하자고 한 게 아니야.”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날 아주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군요.”

“그건 내가 할 소리야. 내 감정도 상처를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냥 나 같은 여자, 아예 없던 거처럼 무시하세요.”

“남자로서가 아니라 상관으로서 명령이야. 내일부터 복귀해.

 

그 외에 다른 건 마음대로 해. 신경 끌 테니까.

 

시간이 지나 서로의 감정이 좀 잔잔해지면 모든 게 더 잘 보이겠지.”

동진의 말에 유미도 더 할 말이 없었다.

“다시 한번 말해. 내일 당장 미술관으로 복귀해.

 

미술관 일에 헌신적이었던 당신의 노력은 충분히 알고 있어.

 

당신의 능력에 전폭적인 존경과 신뢰를 보내고 있어.

 

멋지게 마무리 잘해 주면 좋겠어. 오 실장, 알았지?” 

딴에는 맞는 말이다.

 

사표는 다분히 좀 감정적인 처사였다.  

 

책임을 맡아서 하던 일은 끝까지 해 줘야 한다.

“알겠어요.”

“어제 손찌검한 일은 미안해. 그럼 이만.”

동진이 전화를 끊었다. 맺고 끊는 게 분명한 그다웠다.

 

논리적으로는 그가 한 말이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유미는 왠지 섭섭하고 맥이 빠졌다.

 

겨우 여자로서 앙탈 한번 부려 본 걸로 비쳤을 것이다.

 

어쨌거나 그는 상관이다.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아무리 따져 봐도 결국은 그가 힘이 더 세다.

 

일단은 약속대로 미술관 재개관은 마무리를 해 줘야겠다.

 

얼마나 의욕적으로 했던 일인데…. 윤동진과의 관계가 잘못되면 일과 연애,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쳐야 하는 게 속상했다.

일과 연애, 그리고 결혼. 인생은 선택과 선택되어짐의 연속이다.

 

조만간 유미는 자신의 앞에 놓인 가능성들 중에서 무언가를 버리고 선택해야만 할 것이다.

 

오늘 밤 만난 배명복 이사장의 선택은 무엇일까.

 

그는 교수 채용에서 유미를 선택할 것인가.

 

그리고 윤동진은 유미를 선택할 것인가.

그래도 오유미, 많이 올라왔어.

 

선택의 종류가 이렇게 업그레이드됐잖아.

 

잠깐 유미는 어두웠던 자신의 과거를 떠올려 보았다.

 

그것은 이미 지나온 어두운 터널 속에 갇혀 있었다.

 

다시는 그 갱도 같은 막막한 어둠 속으로 들어가진 않을 거야.

 

그 막막한 터널 속에 갇혀 있을 땐 한 줄기 빛이 요원했건만…

.

인생은 이렇게도 빨리 지나간다.

 

모든 것은 이렇게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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