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숨은 그림 찾기-15
“누구더라, 탤런트 누구 닮지 않았어? 살인미소하며.”
“살인미소 좋아하지 마세요. 어디서 분명히 본 얼굴인데….”
용준이 골똘하게 생각하더니 포기했다.
용준이 어디서 많이 보던 얼굴이라고 하니 유미도 고수익이 왠지 낯설지 않았다.
배명복 이사장은 첫사랑의 원형이 국화빵틀이라고 설파했다.
유미는 그 말에 거의 공감한다.
다만 첫사랑 대신 이상형을 넣으면 더 동감이 커진다.
그렇다. 유미는 미소가 아름다운 남자에게 자동으로 끌린다.
짐승남도 좋고 변강쇠도 좋다.
다만 인두겁을 쓴 짐승, 게다가 미소가 아름다운 짐승이라면 훨씬 좋다.
고사 상에 오른 돼지도 더 눈웃음 치는 돼지가 지폐를 더 물고 있는 법.
고수익에게는 그런 면이 있다.
그리고…그는 어딘지 모르게 이유진을 닮았다.
이유진은 유미에게 수호천사처럼, 흑기사처럼, 키다리 아저씨처럼 나타났다.
그 당시에 유미가 그에게 대책 없이 끌렸던 것은 구렁텅이에 빠졌던 상황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역시 미소가 아름다운 남자였기 때문이었다.
유미의 내면이 황폐하면 황폐할수록 따뜻한 미소는 부나비처럼 유미를 끌어들인다.
인규의 갑작스러운 몰락과 이상한 협박 메일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조여 오는 불안감,
게다가 윤 이사와의 지지부진한 신경전…. 지칠 대로 지친 유미에게 어느 날,
샘물처럼 고수익이 다가왔다.
사과꽃 같은 향기를 풀풀 날리는 미소를 머금고. 산전수전 다 겪은 여자가 하이틴 로맨스의
주인공처럼 대책 없이 유치하고 낭만적이 되는 꼴이 제 스스로도 웃긴다.
이 나이가 되어도 여심(女心)은 늙지 않나 보다.
저녁에 미술관 직원들과 회식 겸 단합대회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유미가
고수익에게 전화를 걸었다.
삼겹살에 반주로 곁들인 소주로 얼큰하게 취했다.
밖에서 비 내리는 소리가 아늑하게 들린다.
“오유미입니당. 약속대로 전화했어요. 제 번호 찍혔죠?”
“약속 지키셨네요. 근데 좀 취하셨나 봐요.
혀가 살짝 꼬이고 콧소리 나니까 너무 섹시해요. 갑자기 술 생각나네.”
“직원들과 한잔했어요. 그런데 이제 실업자가 되셔서 어떡해요. 남의 일 같지 않네요.”
“전 아직은 홀가분하고 좋은데요. 왜요? 유미씨는 잘나가시잖아요.”
“저도 어쩜 조만간 미술관 때려치울지 몰라요.”
“그래요? 그럼 우리 동업할래요?”
“그럴까요? 근데 뭘 하실 건데요?”
“아이템을 생각해 보고 있어요. 제 꿈이 희대의 사기꾼이거든요.
그런데 우리 둘이 합치면 커플사기단으로 완벽할 거 같아요.”
“하하하. 맞아. 살살 웃으면서 여자들 꼬셔서 뒤통수 때리는 거지.”
유미가 깔깔 웃었다.
“많이 해본 거 같네요. 꽃뱀 출신 아닙니까?”
“맞아요. ㅋㅋ 뱀파이어 중에서도 꽃뱀파이어라고. 같은 뱀족이라 알아보는군요.
우리 족속은 늙지도 않고 가공할 만한 아름다움으로 신선한 피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혀를 날름대죠.
파멸의 그날까지 육체의 신선한 젊은 피 맛을 찾아서 본능이 명령하는 대로 유혹하고 피를 빨죠.”
유미는 연극배우처럼 그 말을 하면서 몸 속 깊은 곳에서 욕구가 꿈틀대는 걸 느꼈다.
자신도 모르게 불두덩께로 손을 가져갔다.
피 냄새를 맡은 뱀파이어처럼 참을 수 없는 유혹의 욕구가 솟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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