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유혹

(199)숨은 그림 찾기-8

오늘의 쉼터 2015. 3. 31. 14:29

(199)숨은 그림 찾기-8

 

 

 

 

 

옛날, 이 고풍스러운 부촌의 지완네 집에 드나들면서

 

이곳의 사람들은 자신과는 다른 인종이란 생각을 했었다.

 

지완이 미치도록 부러웠던 그 시절을 떠올리니 격세지감이 느껴졌다.

 

대학 다닐 때 방세가 없어 쫓겨났을 때 지완네 집에 한 달쯤 기거했던 적이 있었다.

 

그 시절 힘겹게 걸어서 오르내리던 언덕길을 최신형 벤츠로 유연하게 오르며

 

잠깐 그 시절의 자신의 모습과 조우했다.

지완의 집은 여전했다. 오히려 두 노인이 예전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어서인지

 

집안에 들어서자 답답한 느낌마저 들었다.

 

마침 지완의 어머니인 전 여사와 지완이 삼계탕이 다 되었다며 식탁에 차리고 있었다.

“유미, 오랜만이구나.”

예전에 이상하게 쌀쌀하게 굴던 전 여사도 반갑게 맞아주었다.

 

마침 간병인이 유 의원의 휠체어를 밀며 식당으로 들어왔다.

“오오, 유미가 왔다구?”

유 의원은 전보다 더 기운이 없어 보였다. 유미는 일어나서 인사를 했다.

“오랜만이구나. 반갑다.”

“아빠, 제가 답답해서 불렀어요.”

“여보, 유미가 옛날에 비하면 용 됐지요?”

전 여사는 말을 해도 살짝 염장을 긁는 게 예나 별반 다름이 없다.

“왜 옛날에도 클 나무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범상치 않았지.”

유 의원이 역성을 들자 전 여사의 얼굴에 살짝 심술기가 돋았다.

“아유, 예나 지금이나 싸고돌기는.”

유 의원은 거물급 정치인답게 대범하면서도 품이 넓었다.

 

지완이나 유미나 친딸처럼 대했다.

 

그게 전 여사나 지완의 질투심을 건드리기도 했다.

 

그녀들 몰래 용돈도 넉넉하게 쥐여주었다.

 

그리고 대학등록금이 없어 쩔쩔맬 때 아무도 몰래 등록금을 대준 적도 있었다.

 

전 여사의 냉대로 유미가 결국 지완의 집을 나왔지만,

 

유미는 그의 도움을 늘 고맙게 생각했다.

 

그 후 정효수의 아이를 갖고 그와 결혼하여 오갈 데 없이 정효수의 집에 얹혀살게 되자

 

지완네와는 자연스레 멀어져 버렸다.

 

갑자기 전 여사가 시계를 보더니 호들갑을 떨었다.

“아유, 나 늦겠어. 유미야, 놀다가거라. 내가 지금 외출해야 해서 말이야.”

“예, 어머니. 여전히 건강하고 아름다우셔서 참 보기 좋아요.”

“나만 그럼 뭘 해. 영감이 저런 걸. 오늘은 네가 오니 화색이 좀 도는 거 같네. 자주 놀러 와.”

전 여사가 인사를 하고 나가자 유 의원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유미야, 소화도 시킬 겸 마당에나 나가 볼까나.”

“그래, 유미야. 난 여기 부엌정리 좀 하고 변호사랑 부동산업자랑 통화를 좀 해야 하니까

 

아빠 모시고 시원한 등나무 그늘에 가서 얘기 좀 나눠.”

유미는 유 의원의 휠체어를 끌고 등나무가 무성하게 그늘을 드리운 야외 벤치로 자리를 옮겼다.

 

날은 흐리지만 바람이 제법 불어와 시원했다.

  

“등나무랑 나무들이 많이 컸네요. 옛날 생각 많이 나요.

 

저한테 정말 잘해주셨는데 어떻게 은혜를 갚죠? 건강하셔야 해요.”

“내가 얼마나 오래 살까 싶다. 참 네 딸 설희라고 했지. 많이 컸겠구나. 한 번 보고 싶구나.”

“예, 이제 처녀티가 확 나요. 피는 못 속이는지 조마조마해요.”

“피는 못 속인다….”

“그 애 때문에 제 인생이 이렇게 꼬인 거 같아요.

 

그 앨 낳고 싶지 않았는데, 아니 그 애 때문에 그렇게 결혼하고 싶진 않았는데…

 

저희 엄마가 결혼을 하도 고집하셔서…제가 얘기했던가요?

 

저희 엄마가 저를 배서 인생이 꼬였다고요.” 

 

 

 

'소설방 > 유혹'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숨은 그림 찾기-10   (0) 2015.03.31
(200)숨은 그림 찾기-9   (0) 2015.03.31
(198)숨은 그림 찾기-7  (0) 2015.03.31
(197)숨은 그림 찾기-6  (0) 2015.03.31
(196)숨은 그림 찾기-5  (0) 2015.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