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숨은 그림 찾기-4
동진은 유미의 물음에 대답할 수 없었다.
사실 이 사진을 받고 나서도 이렇게까지 유미 앞에서 까발리고 싶지 않았다.
유미 말대로 결정적인 증거도 아니면서, 확인도 거치지 않은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과한 술 탓인지 모른다.
우울한 기분에 술을 마시고 유미를 불러내 얼굴을 보자 강렬한 애증의 상반된 감정이 솟아올랐다.
증오와 배신감으로 유미를 갈겨 주고 싶은 욕구와 그만큼 외로운 느낌으로 유미에게서
사랑을 갈구하고 싶은 욕구가 서로 싸웠다.
아버지 윤 회장이 유미와의 결혼을 극구 말리는 건 당연하다 싶다가도 지나친 구석이 있었다.
유미와의 결혼뿐 아니라 만나는 것조차도 꺼렸다.
얼마 전에는 윤 회장의 생일을 맞아 D그룹의 강 회장 부부와 그들의 장녀인 강애리를
집 안으로 초대해서 일부러 둘만의 시간을 마련해 주기도 했다.
정략결혼엔 관심조차 없는 동진이지만 의외로 강애리는 동진에게 깊은 호감을 보였다.
결혼 상대로는 꽤 괜찮은 여자였다.
여자로서도 매력이 있었다.
그러나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이끌림과 편안함으로 따진다면,
오유미와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결론은 오유미를 갖고 싶은 것이다.
잃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 애와는 빨리 청산해라. 그 앤 너를 파멸로 이끌 애야.”
동진은 윤 회장이 틈날 때마다 하는 얘기를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러다 오늘 윤 회장의 호출이 있었다.
본사의 회장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릴 때였다.
동시에 누군가가 급하게 동진의 어깨를 부딪치며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기분이 나쁜 나머지 뒤를 돌아보니 장발에 모자를 쓴 남자의 뒷모습이 언뜻 보였다.
곧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혀 버렸다.
회장실에서 윤 회장은 동진을 보며 새로운 제안을 말했다.
“사실 강 회장과 의기투합한 지 오래됐다만, 애리랑 네가 잘 어울리더구나.
애리도 널 좋아하는 거 같고. 너도 알다시피 애리가 어디 빠지는 구석이 있냐?
네 머릿속에 오유미란 애만 지우면 강애리의 진면목이 보일 거다.
애리랑 결혼하고 한 2년 해외지사 근무를 하면 어떻겠니?”
“아버지 뜻은 알겠지만, 결혼이란 게 어른들 머릿속 계산이랑 다르지 않습니까.”
“정신 차려라, 이 녀석아. 암튼 오유미는 안 된다.”
“그 여자가 가진 조건이 저만 못해서요?”
“결혼이란 비슷한 족속끼리 해야 탈이 없는 법.”
“사랑 없는 결혼은 한 번이면 족해요. 이번엔 제 뜻대로 하게 두시면 좋겠어요.”
윤 회장이 끌끌 혀를 찼다.
“사랑? 네가 그 애를 사랑하는 만큼 그 애가 너를 사랑한다더냐?”
“그게 저희 관계의 핵심인 걸요.”
“이런 창자 빠진 놈. 핵심, 좋아하네. 그런 애들의 흑심을 모르냐?”
“아버지. 오유미는 그런 여자가 아닙니다. 흑심 같은 거 없어요. 순수해요.”
“널 갖고 노는 요망한 계집애야. 덫을 여러 군데 놓은 거야. 네가 재수 없게 걸려든 거고.”
동진은 아버지의 판단과 선입견에 동의할 수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왜 그렇게 오유미를 미워하시는지 이해가 안 돼요.
아들이 사랑하는 여자를 단 한번만이라도 따스한 눈으로 보시면 안 되나요?
아버지가 저를 믿듯이 제가 택한 여자를 믿으시면 안 되냐고요.”
“그래. 그러려고도 했지. 하지만 이걸 보고도 그럴 순 없지. 그 애 남자관계가 꽤나 복잡하더라.”
윤 회장이 내민 것은 바로 서류 봉투 안의 사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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