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유혹

(189)내가 누구인지 알아맞혀 봐-21

오늘의 쉼터 2015. 3. 29. 23:40

(189)내가 누구인지 알아맞혀 봐-21

 

 

 

 

 

유미가 비명을 지르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숙였다.

 

다행히 소주병은 벽에 맞아 박살이 났다.

 

인규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울기 시작했다.

 

유미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참담한 기분으로 인규를 바라보았다.

“요즘 어느 순간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아무 의욕이 없어.”

잘나가던 남자가 루저가 되는 게 이렇게 간단하다니…

 

버림받은 남자의 쓰라린 눈물을 흘리며 인규가 말했다.

“지완이 날 떠날 만도 해. 이해해. 베네치아의 꿈은 사라지고,

 

가게는 엉망이 되어서 빨리 정리를 해야 해.

 

미친 놈처럼 돼서 남자구실도 제대로 못하지.

 

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놈이야.

 

게다가 오유미마저 날 버리려고 하지.

 

아니 이미 버린 지 오래지.

 

 알맹이만 빼먹고 껍데기는 집어던진 지 오래인 걸 몰랐던 거야.”

유미는 인규의 넋두리를 아무 말 없이 그대로 듣고 있었다.

 

가슴 속에서 무언지 모를 불길이 타올랐다.

 

그의 모습이 불쌍하기도 하고 가증스럽기도 해서 짜증이 치받혔다.

 

유미야말로 소리치며 울고 싶은 걸 꾹 눌러 참았다.

 

대신 냉장고에서 찬물을 한 잔 따라 인규에게 내밀었다.

“이거 마시고 진정해. 그리고 차분하게 생각해 보자.”

갑자기 인규가 물잔을 든 유미의 손을 낚아챘다.

 

그 통에 물잔의 물이 쏟아져 인규의 바지춤을 적셨다.

 

인규는 아랑곳하지 않고 유미의 손을 자신의 바지춤에 갖다댔다.

“이렇게 죽고 싶진 않아.”

갑자기 인규가 바지춤을 내렸다.

 

이번엔 유미의 머리채를 잡아채더니 광포하게 유미의 얼굴을 자신의 가랑이에 처박았다.

“살려봐. 살려내!”

인규의 축 늘어진 인절미 같은 물건이 얼굴에 닿았다. 갑자기 유미는 모욕감이 들었다.

 

유미는 얼굴을 외면하고 고개를 꺾었다.

 

그럴수록 인규는 유미의 머리채를 쥐고 놓아주지를 않았다.

 

갑자기 모욕감이 분노로, 분노가 이상한 흥분으로 전이되는 걸 느꼈다.

 

유미는 인규의 물건을 인절미처럼 한 입에 넣고 물어뜯을 듯 씹었다.

 

인규가 비명인지 흥분인지 모를 소리를 내질렀다.

 

그때 현관의 벨이 울렸다.

순간 두 사람의 몸짓은 굳어버렸다.

 

누굴까? 갑자기 머리에 떠오른 사람은 윤동진과 새벽에 귀가하는 수민이었다.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 수민이 덜컥 문을 여는 것은 아닐까?

 

유미는 인규의 바지춤을 얼른 올려주었다.

 

현관으로 나가려다 유미는 그만두었다.

 

만약 윤동진이라면?

 

유미는 돌아서서 인규에게 조용히 하라는 몸짓으로 입술에 손가락을 댔다.

 

두 사람은 숨을 죽인 채 벨소리가 끝날 때까지 가만히 있었다.

 

벨소리가 한참 울리더니 곧이어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유미야, 유미야!”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였다.

“유미야, 집에 없니? 나 지완이야. 있으면 문 좀 열어줘!”

유미보다는 인규가 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문을 열어줄 수는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곧 지완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쩔까 망설이다가 유미는 안방으로 들어가 침대 이불을 뒤집어 쓰고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니? 간단히 말해. 나 전화 받기 좀 그래.”

“너 집에 없나 보구나.”

“응.”

“혹시…? 미안. 작업… 중인 거 같구나.”

“왜?”

“나 용준씨랑 다퉜어. 혼자 어디 갈 데가 있어야지. 나 좀 재워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