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유혹

(188)내가 누구인지 알아맞혀 봐-20

오늘의 쉼터 2015. 3. 29. 23:39

(188)내가 누구인지 알아맞혀 봐-20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었다.

 

집으로 들어가니 놀랍게도 인규가 와 있었다.

 

비밀번호를 바꿔야지 하다가 차일피일 미뤘는데 그가 갑자기 집 안에 들어와 있을 줄은 몰랐다.

그는 소파에 쭈그리고 앉아 참치 캔 하나를 안주 삼아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어머, 깜짝이야. 웬일이야?”

“놀라긴. 지은 죄라도 있어?”

얼굴이 불콰해진 그가 퉁명스레 물었다.

“연락이라도 하고 오지.”

“그러면?”

“그러면 안줏거리라도 사왔을 거 아냐.”

유미는 알아주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베네치아의 오너가 강소주를 마시고 있는 모습이 낯설었다.

“나도 한 잔 줘.”

유미가 잔을 가져와 내밀었다.

 

인규가 유미의 잔에 소주를 따랐다.

 

젓가락으로 참치 한 조각을 집어먹으며 유미가 말했다.

“오랜만에 이렇게 마시니까 소주도 맛있네.

 

옛날 돈 없을 땐 이렇게 고추참치 캔 하나 놓고 아껴가며 소주 마시면 얼마나 맛있던지!”

아무 말 없이 소주 한 병을 봉지에서 다시 꺼내 마시던 인규가 대뜸 물었다.

“지완이 어디 있는지 알지?”

“무슨 소리야? 무슨 일 있었어?”

“집을 나갔어. 지완이 어디 있는지 바른대로 대.”

“그으래? 난 몰랐어.”

유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란 척을 했다.

“여기 와 있는 줄 알았어.”

“지완이하고 연락 안 한 지 꽤 됐어. 안 그래도 궁금했는데…. 왜 집을 나갔어?”

“더 이상 못 견디겠대. 이혼해 달래.”

인규가 이번에는 병나발을 불었다.

 

“그래서…?”

“싫다고 했어. 어떻게 지켜온 결혼생활인데. 이젠 베네치아 부흥의 꿈도 접었어.

 

견디는 게 끔찍해. 내가 왜 이렇게 됐나 몰라.”

인규가 머리칼을 쥐어 뜯었다.

“환청과 환각, 그리고 악몽에 시달려. 가게는 엉망이 되어가고.

 

아아, 이젠 물건도 안 서. 남자로서 끝났어.

 

아까도 네 아파트로 오는데 누군가 미행을 하는 거 같았어.”

“인규씨. 왜 그렇게 약해. 여자인 나도 버티며 사는데. 다 과대망상이야.”

“휴대폰으로 누군가 전화했다가 끊기도 하고….

 

누군가 나를 노리고 있는 거 같아. 지완이 떠나면 난 완전 혼자야.”

“그렇게 생각하지 마. 일시적인 현상일 거야.

 

병원 다니면서 약도 먹고 하면 다시 예전의 유쾌하고 건강한 인규씨로 돌아올 수 있어.”

“지완이 떠나면 나랑 같이 살래?”

“그럼 우리, 행복할 거 같아?”

유미는 서서히 고개를 흔들었다.

“폴에게 전화했었어. 그때 그 일 이후 왜 완벽하게 처리하지 못했어?

 

누군가 인규씨가 이유진의 집에 들른 이후에 이유진의 물건을 가져갔대.

 

작은 가방이었다는데 그 안에 뭔가 중요한 단서가 다 들어있었던 거 같아.”

“그래서 나를 원망하는 거야? 결국 날 이렇게 파멸시킨 건 너야.

 

넌 아무 책임도 지지 않고 나를 파멸시키고 있잖아.”

인규가 갑자기 악을 쓰며 소주병을 유미의 얼굴로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