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내가 누구인지 알아맞혀 봐-11
며칠이 지나도 이상하게 윤동진에게서는 연락이 없었다.
조만간 그에게서 어떤 말이 나올 줄 예상하고 있던 유미로서는 의외였다.
그도 얼마 전엔 할 말이 있다고 보고 싶어 하지 않았는가.
참다 못한 유미가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
일 핑계를 대고 그의 비서실을 통해 전화를 해 보았지만, 역시 연결이 되지 않았다.
해외에 나갔나 하고 비서에게 물어보니 그는 국내에 있다고 했다.
유미의 머리에는 윤 회장의 각본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 같은 그의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유미는 그가 그렇게까지 줏대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싶진 않았다.
그렇지 않으면 그에게 분명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는 걸까.
재벌의 마누라가 안 되어도 좋다.
조건 좋은 미술관 책임자 자리를 그만두어도 좋다.
그러나 돈 좀 있는 재벌 부자(父子)의 손에 놀아나는 것이라면 참을 수 없다.
그걸 속 시원히 따지고 싶었다.
그러나 그 오기도 잠깐, 유미는 또다시 홍두깨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내가 누군지 아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입니다.
내 행동이 비열하다고 비난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추악한 과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테니.
내가 원하는 것은 차차 밝히도록 하지요.
나도 당신을 만나 진지하게 대화를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당신이 쉽게 단순하게 생각하는 그런 건 아닐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럴 상황도 아니라 판단이 됩니다.
그러니 공연히 나를 파헤치는 짓은 하지 말기 바랍니다.
때가 되면 우리는 만날 것입니다.
그럼 만날 때까지 안녕….’
유미의 어깨에서 힘이 빠지고 마우스를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어둠 속에 내던져진 먹잇감처럼 유미는 보이지 않는 어둠 저편의 적이 두려웠다.
도대체 누구일까.
유미는 인터폰으로 박용준을 찾았다.
용준이 방으로 들어왔다.
“전에 부탁한 거 어떻게 됐어?”
“안 그래도 말씀 드리려 했는데…. 사실 좀 더 완벽하게 알아보려고 기다리고 있어요.”
“아는 거까지만 얘기해 봐.”
“전에 주신 홍두깨인지 방망이인지 메일 주소를 추적하니
외국에 있는 컴퓨터 사용자라고 나온다는데요?
아마 더 이상 추적은 좀 어려운 거 같아요.
그래도 좀 더 알아봐 달라고 해 놨어요.”
“외국이라고?”
“예….”
“그리고 또 있잖아.”
“아, 예. 그 남자는 아직 신원 미상으로….”
“뭐야?”
“계속 알아보라 그랬어요.”
“그럼 여기 핸드폰 번호도 줄 테니 은밀히 알아봐.”
유미는 용준에게 핸드폰 번호를 적어 주었다.
유미는 한동안 무슨 생각을 하다가 용준에게 말했다.
“오늘이나 내일 밤 시간 자유로워?”
용준이 화색이 돌며 대답했다.
“아, 예에! 그럼요.”
“내가 콜하면 언제든 올 수 있도록 시간 비워 둘 수 있어?”
“당근이죠. 언제나 콜해 주시나 기다리고 있어요. 특히나 얘가 워낙 참을성이 없어서….”
용준이 자신의 아랫도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어깨를 으쓱했다.
“이놈이 언제 한번 또 안 부르나 하고 목이 빠지게 기다립니다.
구지가(龜旨歌)를 한번 더 부르셔야죠.”
용준이 너스레를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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