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내가 누구인지 알아맞혀 봐-9
“어쩌니. 미리 전화라도 하고 오지. 나 선약이 있어.”
“그래? 그럼 다음에 하지 뭐.”
승주가 남자를 상대로 그림에 대한 소개와 가격에 대해 말하고 있는 동안 유미는
전시실을 둘러보았다.
전시하고 있는 화가는 신인과 중견작가의 중간쯤 되는 인기 구상작가였다.
유미는 그림을 둘러보다가 승주에게 눈짓으로 다음에 보자는 작별인사를 보내며 화랑을 나섰다.
집으로 갈까하다가 오랜만에 예전에 자주 오던 맛깔스러운 전통음식점 생각이 나서
그리로 발길을 돌렸다.
그 집의 다양한 가정식 반찬으로 오랜만에 솜씨 좋은 엄마가 해주는 밥다운 밥을 먹고 싶었다.
특히 잘 삭힌 홍어삼합을 알싸하고 텁텁한 막걸리를 반주로 먹고 싶었다.
식당이 있는 골목길로 발길을 돌리는데 누군가 말을 붙였다.
“괜찮으시면 저녁 같이 하시겠습니까?”
유미가 뒤를 돌아보니 좀 전에 화랑에서 만났던 남자였다.
“물론 제가 사드리는 겁니다. 혼자 드실 거 같은데, 저도 저녁 혼자 먹어야 하니까 이왕이면….”
“글쎄요. 너무 갑작스러워서요.”
“갑작스럽게 들이대는 거 같아 경계를 하시는 게 당연합니다만…
사실 저로서는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어요.”
남자가 쑥스러운 웃음을 날렸다.
아, 그런데 이 남자 눈웃음이 장난 아니다.
살인미소라는 게 바로 이런 건가.
가만히 있을 때는 진지해 보이는데 웃으니 상큼하고 달콤한 사과향이 풀풀 날리는 것만 같다.
“아까 그림을 사시려는 거 같던데 얘기는 다 끝내셨어요?”
“아, 그거… 참, 친구분한테 들으니 재벌그룹의 미술관 책임자로 있으시다고요.
그래서 식사 대접이나 하면서 컬렉션에 대해 한 수 배우려고요.
이 골목에 제가 좋아하는 밥집이 있어요.
전 오늘 홍어삼합에 시원한 막걸리가 땡기는데, 어떠세요? ”
이 남자가 남의 마음속을 어떻게 알았나?
남자는 공교롭게도 유미가 가려던 식당을 언급했다.
남자가 입맛을 다시며 웃으며 이야기하니 갑자기 막걸리 생각이 간절했다.
“그러죠.”
식당에 들어와 방을 잡고 나니 그가 명함을 내밀었다.
이름은 고수익. 보험회사의 대리였다. 유미가 이름을 보고 웃으며 물었다.
“ㅋㅋ 죄송해요. 고수익? 본명이세요? 전 오유미라고 해요.”
“예. 제가 이것저것 하다가 입사를 늦게 해서 만년대리입니다.”
“네에….”
“조만간 그만둘까 해요. 그냥 제 사업을 한 번 해보면 어떨까 생각 중이에요.”
“그게 그림과 관련 있나 보죠?”
“그런 건 아니고요. 사실 그림에 관해서는 문외한입니다.
제가 주식을 해서 사이드로 번 돈이 좀 있는데 그림에 투자를 좀 해볼까 해서요.
고상한 취미로 그림 수집을 하다보면 나중에 수익도 나고, 뭐 꿩 먹고 알 먹고일 것 같아서요.”
“일단 그림을 좋아하셔야죠. 그래야 컬렉션이 즐겁죠. 돈이 되는 건 나중 문제고요.
당장 수익을 바라는 건 좀….”
유미는 일개 회사의 대리가 취미로 하기에는 컬렉션이 사치스러운 취미라는 걸
에둘러서 말한 셈이다.
단기간에 고수익을 창출하는 분야는 아니니까.
하긴 모르지. 고수익이란 이 남자, 어쩌면 이름값을 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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