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유혹

(157)카르페 디엠 (Carpe diem)-8

오늘의 쉼터 2015. 3. 28. 21:10

(157)카르페 디엠 (Carpe diem)-8 

 

 

 

 

 

생년월일시라니? 궁합을 보겠다는 건가?

 

사주를 보겠다는 건가?

 

최첨단 건물을 짓는 YB개발의 총수의 머리에서 고작?

“유미씨가 저보다 한 살 어려요.”

공연히 동진이 끼어들자 윤 회장이 지청구를 주었다.

“넌 쓸데없이 나서지 마라.”

유미는 메모지에 생년월일시를 적어 주었다.

 

그걸 건네받은 윤 회장이 말했다.

“내가 생년월일시를 받는 걸 결혼으로 통하는 길이라고 김칫국부터 마시지는 말아요.”

점점 모욕감이 느껴졌다.

 

어찌해도 나는 윤 회장에게 밉상이다.

 

객관적인 조건도 탐탁해 하지 않으니 사주나 궁합에서 나쁜 건 다 트집을 잡을 것이다.

 

노예로 차출당하는 것도 아니고 오랑캐에게 공녀로 바쳐지는 것도 아닌데,

 

이런 대접을 받아도 되는 걸까?

 

설사 결혼이 성공한다 하더라도 저 까칠한 노인네와 인연이 얽히는 건 싫다.

유미는 더 이상 식욕이 나지 않았다.

 

담배 생각이 간절했다.

 

실례를 무릅쓰고 잠깐 나왔다.

 

화장실에 가서 담배 한 대를 피우고 다시 룸으로 들어가려는데 안에서 소리가 들렸다.

“저 아이 보통 애가 아니다. 너 머리 꼭대기에서 놀 애야.”

“시간을 두고 이쁘게 봐 주세요. 좋은 여자예요.”

“암튼 안 된다.”

“아버지. 도대체 왜 그렇게 삐딱하게만 보세요?

 

저 여자 정말 열심히 사는 현명한 여자예요.”

“도대체 왜냐고? 이 바보 같은 녀석. 그 이유를 내가 알려 주지. 조만간.”

유미가 들어서자 윤 회장이 머뭇거리다 마무리를 지었다.

“어쨌거나 만나서 반가워요. 이것도 인연인데 어떤 식으로든 좋은 인연이길 바라요.

 

우리 윤조미술관의 훌륭한 실무자로. 또 알아요? 내 며느리가 될지도.

 

사람의 일은 한 치 앞도 모르니까. 내가 좀 까칠하게 굴어도 오유미라는

 

자네 개인에게는 아무 감정이 없어요. 언제 한번 또 봅시다.”

윤 회장을 배웅하고 돌아서자 동진이 유미에게 말했다.

“너무 신경 쓰지 마. 내 전처 때도 저러셨어.

 

일단 내 사람이 되면 품을 벌리는 분이야.

 

속정은 더 깊은 분이지. 지금도 내 전처와 가끔 만나 식사하셔.”

동진이 마지막 말은 괜히 했나,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좀 참담하고 힘드네요.”

유미가 한숨을 쉬었다. 공연히 서러워졌다.

 

그 기분을 알았는지 동진이 유미의 어깨에 손을 얹고 위로했다.

“그래도 사주를 적어 달라 그러신 건 아주 관심이 많다는 얘기야.

 

난 아주 긍정적으로 생각이 들어.”

“됐어요. 더 이상 얘기하지 말아요.”

“기사 보냈으니 내 차로 드라이브나 할까?”

“좀 힘들어요. 집에 가서 쉴래요.”

유미는 아쉬워하는 동진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왔다. 머리가 아팠다.

 

대충 옷을 벗고 침대에 들었다.

 

시간은 겨우 아홉시 반이었다.

 

잠자리에 들기는 좀 이른 시각이었다.

 

마음이 허전했다.

 

누군가에게 답답한 속을 털어놓고 싶었으나 떠오르는 마땅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정효에게라도 전화를 할까.

 

그러나 저녁 공양도 예불도 끝났을 너무 늦은 시각이다.


이렇게까지 해서 재벌가의 며느리로 들어가야 하는가.

 

평생 유목민처럼 자유롭게 지내다가 윤규섭 같은 우두머리의 조직으로 들어가서

 

눈치를 보며 배부른 돼지처럼 지내는 게 행복인가?

 

그렇지 않으면 그걸 견딜 만큼 나는 과연 윤동진을 뼛속 깊이 사랑하는가?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누굴까?

 

동진일까?

 

발신인은 의외의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