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카르페 디엠 (Carpe diem)-5
생각만 해도 싫다는 듯 동진이 고개를 흔들었다.
“결혼을 한다면 모를까. 나를 구속할 생각은 마세요.”
유미가 못을 박았다.
“그리고 결혼을 미끼처럼 내게 들이대지도 말아요.
나 결혼에 환장한 여자 아니에요.
그리고 돈 좋아하지만 돈의 노예가 될 정도로 자존심 없는 여자도 아니에요.”
동진에게 은근 까다로운 여자로 부각되길 원하며 그 정도에서 유미는 입을 다물었다.
이 정도면 구매욕을 끝까지 부추긴 셈이다.
돈이 있는 남자들은 돈으로 못할 게 없다고 생각한다.
약간 약이 오른 듯한 얼굴로 동진이 말했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맛을 안다고, 돈을 써보지 않은 사람이 오히려 돈맛을 모르는 법.”
“비웃는 거예요?”
“내가 부자인 여자들을 싫어하는 건,
자신들이 그만큼 가졌으면서도 남자 재산이 그에 못 미치면 억울해 죽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거야.
유미씨는 좀 달라. 뭐랄까, 돈에 대한 철학이 있다고 할까?”
철학은 무슨 개똥철학?
어차피 잃을 게 없는 사람은 용감하다.
유미는 아무리 돈이 없는 시절에도 절대 굽실대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당당하고 초연하면 돈이 제 발로 걸어온다.
아님 말고. 언제 내가 있는 년이었나, 뭐. 또 그러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물론 속으로는 간절하게 바란 적이 많았다.
욕망을 부끄러워하진 않았지만, 절도를 지키고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을 뿐이다.
“그래서 말인데, 이번 주말에 아버지를 만나면 잘 좀 보였으면 좋겠어. 내 희망사항이야.”
“회장님의 입장은 어떠신데요?”
“어떤 선입견도 갖지 말고 만나는 게 좋을 거 같아. 그냥 평상시의 유미씨를 보여주면 돼.”
“섹시하게?”
유미가 농담조로 말하며 웃었다.
“유미씨 특유의 자신감과 카리스마, 그리고 열정적인 에너지가 있잖아.”
“에궁, 그건 남자를 제압할 때나 쓰는 거지. 조신하게 보여야죠.”
“알아서 해. 뭐든 순발력 있게 잘 하잖아.
좋은 분이야. 다만 노인네가 좀 변덕이 심해.
까다로운 편이지.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더한 거 같아.”
“연애 안 하시나?”
“사람을 잘 못 믿으셔. 이제 우린 한 배를 탔어.
어쨌든 둘이 힘을 합쳐 노를 저어서 우리가 원하는 항구에 도착하자구.”
동진의 그 말을 들으니 이제 좀 정착하고 싶다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다.
동진이 그때 유미의 엉덩이를 콱 물었다.
“아아, 귀여운 나의 암말!”
윤동진의 씨받이 암말로 살아갈 수 있을까.
그의 씨를 배고 그의 후계자를 만들고 그리고 돈맛을 알고 돈에 중독되고….
그러고 나면 그 끝은 무엇일까. 유미는 욕망의 끝까지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 자체가 하나의 욕망인지, 아니면 생에 대한 호기심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어디로든 달리고 싶은 것만은 분명하다.
“사랑해.”
동진이 속삭였다.
그 말이 마치 당근이라도 되듯이,
아니 휘발유라도 되듯이 유미의 온몸이 다시 충전되었다.
동진이 다시 시동을 켜고 밀고 들어왔다.
그래, 달리는 거야.
온몸의 세포가 생생히 아우성치는 이 살아 있는 삶의 순간을 느끼는 거야.
사랑은, 생은, 다시 올 수 없는 순간들의 질주일 뿐이다.
아아, 카르페 디엠(Carpe di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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