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유혹

(159)카르페 디엠 (Carpe diem)-10

오늘의 쉼터 2015. 3. 28. 21:14

(159)카르페 디엠 (Carpe diem)-10 

 

 

 

 

 

엄마의 유품이라니? 엄마가 세상을 떠난 건 벌써 10년도 넘었다.

 

엄마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전해 들었을 때는 이미 장례식도 끝났을 때였다.

 

당시 유미는 말하자면 ‘사랑의 도피’중에 있었다.

 

정효수와 이혼을 결심했지만 그의 집안의 반대와 보복을 피해 가출을 한 상태였다.

 

게다가 진호를 만나 동거를 하던 중 걸핏하면 정효수가 찾아와 행패를 부리는 통에

 

진호와 외딴 섬에 잠시 묵고 있었다.

엄마는 목을 매 자살했다고 한다.

 

맨 처음 엄마의 죽음을 발견하고 신고를 한 사람이 조두식이었다고 한다.

 

그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그날은 그가 외항선을 탄 지 4개월 만에 부산에 기착하여

 

엄마를 찾아간 날이었다고 한다.

 

엄마는 입던 옷 그대로 화장실의 샤워커튼 봉에 목을 매달고 있었다 한다.

 

유서는? 물론 있었다.

 

흰 종이에 엄마답지 않게 휘갈겨 쓴 두 줄의 문장.

 

“끝도 없이 고통스러운 인생 여기서 끝내고 싶어.

 

내가 사랑했던 이들 모두 남아서 내 대신 행복하길.”

 

엄마의 필체는 맞았지만, 유미에게 남긴 편지는 한 조각도 없었다.

유미가 내려갔을 때, 이모는 머뭇거리며 말했다.

 

좀 미심쩍어. 목을 매긴 했지만, 걔 얼굴과 팔에도 상처가 있던데…

 

그 소리를 듣고 유미는 단박에 조두식을 의심했다.

 

그러나 유미가 연락두절이 된 사이에 그는 얼마든지 증거인멸을 했을 것이다.

 

그렇게 급히 엄마를 화장시킨 것도, 아무리 집을 뒤져도

 

별 특별한 유품과 유물이 없는 것도 이상했다.

오래 전, 유미가 대학에 가려고 서울로 떠날 때 보았던 엄마의 일기장조차도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물론 그 사이에 엄마가 태우거나 버렸을 수도 있다.

 

희미하지만 아직도 잊히지 않는 구절이 있는 그 일기장을 유미는

 

다시 확인해 볼 도리가 없었다.

 

머릿속에나 남아있는 그 구절을 유미는 다시 떠올려 보았다.

 

‘유미가 서울로 간다.

 

아무리 막으려 해도 유미는 큰물에 나가 노닐어야 할 물고기다.

 

아니면 천륜이 부르는지도 모르겠다.

 

아아, Y… 평생을 그의 숨겨진 여자로 산다 해도 나는 괜찮아…하지만 언젠가는….’

그런데 엄마의 유품이라니?

 

유미는 왠지 모르게 가슴이 떨려왔다.

 

엄마의 유품은 엄마 인생의 비밀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을지 몰랐다.

 

엄마의 인생은 애초에 나의 인생과 탯줄처럼 연결되어 있을 것이니…

 

그것이 어쩌면 내 인생의 밑그림일지도 모른다.

 

유미는 다음 주에 오겠다는 수민을 빨리 만나고 싶어졌다.

한 번도 행복하지 못했을 엄마의 인생,

 

게다가 고통스러운 죽음을 택한 엄마.

 

마지막 모습도 딸에게 보이지 못하고 한 줌 재로 사라진 엄마.

 

유미는 엄마만 생각하면 가슴이 아팠다.

 

엄마의 인생을 대신하여 세상에 복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동안 떨쳐버리지 못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처음엔 교활한 조두식에게 분노가 치밀었다.

 

그러나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를 생각하면 아주 복잡한 감정에 휩싸인다.

 

무섭고도 더러운 기분이다.

 

그러나 일단은 그를 두고 봐야 할 일이다.

 

유미는 인터넷으로 은행의 잔고를 확인해 본다.

 

그에게 약속한 돈을 일부 입금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어쨌거나 지금은 밑밥을 뿌려야 할 때다.

그런데 조두식의 말을 그대로 다 믿을 수 있을까?

 

그의 뒤를 좀 캐봐야 하는 게 아닐까?

 

잠깐 생각이 복잡해졌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유미에게 오래 머물 틈 없이 또 다른 의혹이 유미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