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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4>28장 조국 [6]

오늘의 쉼터 2015. 3. 22. 16:50

<294>28장 조국 [6]

 

(585) 28장 조국 <11>

 

 

 

김동일 위원장이 신의주를 방문했을 때는 오후 3시경이다.

평양에서 신형 헬기 편으로 날아온 김동일의 표정은 밝다.

헬기장으로 마중 나간 서동수에게 활짝 웃는 얼굴로 말했다.

“신의주가 볼 때마다 달라집니다.”

“감사합니다, 위원장 동지.”

김동일이 서동수의 손을 잡더니 귀에 입을 붙이고 낮게 말했다.

“형님도 얼굴 좋아지셨소.”

서동수는 정색한 채 웃지도 않았으므로 김동일이 무슨 말을 했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었다.

김동일은 신의주에 자주 오는 편이어서 지리에도 익숙하다.

숙소로 삼은 고려호텔 헬기장에 내린 터라 그들은 곧장 귀빈실로 옮겨 갔다.

김동일의 오늘 방문은 서동수가 ‘신의주 현안’에 대한 보고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은밀하게 요청했기 때문이다.

나오미하고 만난 지 이틀째가 되는 날이었으니 일본 측은 짐작하고 있을 것이었다.

귀빈실의 소파에는 서동수와 김동일이 마주 보고 앉았으며 배석자는 셋이다.

신의주 측에서는 특보 안종관이, 북한 측에는 호위총국 사령관이며 최측근인 박영진이 참석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은 귀빈실에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국의 국정원장 박기출이다.

신의주에서 대마도 관련 3자회담을 하려는 것이다.

박기출은 한국 대통령 한대성의 대리인 역할이다.

모두 자리를 잡았을 때 서동수가 바로 본론을 꺼내었다.

“일본은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통고를 해왔습니다.

물론 비공식 통고지만 오늘 우리가 그 일 때문에 만나는 것도 짐작하고 있을 겁니다.”

서동수가 나오미한테서 들은 이야기를 간략하게 설명하자 김동일이 옆에 앉은 박영진을 보았다.

턱을 들어 보이는 것은 발언하라는 표시다.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박영진이 양복 차림의 어깨를 부풀렸다가 내리면서 말을 이었다.

“일본은 해군, 공군력은 막강하지요. 그럴 만합니다.”

모두 잠자코 박영진의 입을 보고 있다.

박영진은 60대 중반의 대장이니 북한 군부의 장성 기준으로 보면 젊다. 영계다.

지금도 북한국 장성은 70대가 많다.

박영진이 손에 든 서류를 읽는다.

“하지만 한반도에 전쟁을 일으키지는 못합니다.

어림없지요.

대마도 앞에 떠 있는 우리 군함 한 척이라도 손상이 되면 바로 핵이 날아갑니다.”

모두 숨을 죽였다.

그 핵이다. 만날 핵핵거리다가 숨이 막힐 뻔했던 그 핵.

그런데 서동수가 오늘은 그 핵 소리가 참 시원하게 들린다는 생각을 했다.

서동수는 길게 숨을 뱉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전쟁을 불사하겠다고 한 것처럼 이 말도 전시용이다.

미국과 중국이 각각 일본과 북한의 동맹국으로 남아 있는 상황이며 한국 또한 그렇다.

미국과 중국의 중재를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때 박기출이 헛기침을 했다.

“미국 측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습니다. 곧 부통령이 한국에 올 겁니다.”

그러자 김동일이 씩 웃었다.

“우리도 중국 총리가 방문하겠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김동일의 시선이 박기출에게 옮아갔다.

“자, 이만하면 대마도 문제를 국제적으로 공론화하는 데 성공한 셈이 되겠지요?”

“예, 그렇습니다.”

박기출이 고분고분 대답했다.

어느새 독도 문제는 쏙 들어갔다.

이번에도 북한 외교 전술의 승리다.

그러자 어깨를 편 김동일이 말했다.

“6·25전쟁만 없었다면 대마도를 우리가 가져올 수 있었는데 안타까워요.”

 

 

 

 

(586) 28장 조국 <12>

 

 

 

“한국 국격이 배나 높아졌습니다.”

김동일과 저녁 식사까지 마치고 공관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안종관이 불쑥 말했다.

오후 10시 반이 되어가고 있다.

“전에 한국 내부는 친북, 종북, 반(反)대한민국 세력이 버젓이 존재하고 있었지요.

사회의 모든 요소에 암세포처럼 박혀 있던 그 세력들 때문에 국력(國力)이 절반 이상이나

깎여 있었습니다.”

안종관은 김동일이 따라주는 백두산 위스키를 주는 대로 먹더니 얼굴이 상기되어 있다.

그러나 목소리는 분명했고 열기가 달아올랐을 뿐이다.

“그래서 대외(對外) 영향력이 감소되었을 뿐만 아니라

국론은 분열되었고 북한이 6·25 직전처럼 오판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한국 내에 종북, 반대한민국 세력이 목소리를 탕탕 치고 반대로 군과 검경까지 위축되어 있는 걸 보면

북한 측으로서는 총 한 발만 쏴도 무너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천안함을 격침하고 연평도에 포탄을 날렸는지 모른다.

길게 숨을 뱉은 안종관이 서동수를 보았다.

“장관님, 보십시오. 정화된 대한민국을 누가 무시합니까?

현재의 남북한 자체만으로도 이미 강국입니다.

남북한이 한목소리로 대마도 반환을 요구하니까

당사자인 일본은 물론 미국과 중국도 무시하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안종관의 감동에 전염된 서동수는 숨을 들이켰다.

이것만으로도 대단한 소득이다.

대마도를 찾지 않았어도 이미 독도 문제는 자취를 감추었지 않은가?

미국은 벌써부터 북한의 핵과 대마도를 바꾸는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중국도 호의적이다.

“미국과 중국도 어려운 상대요.”

좌석에 등을 붙이고 앉은 서동수가 창밖의 야경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나는 요즘 고종의 밀서를 품고 미국으로 떠난 젊은 이승만이 가끔 떠오릅니다.”

서동수는 무심결에 자신의 독서 자랑을 한 셈이었는데 옆에 앉은 안종관이 숨을 들이켜는

소리를 내었다.

안종관이 눈을 크게 뜨고 서동수를 보았다.

“책을 읽으셨습니까?”

“이승만이 갑신정변의 주역인 박영효 일파로 몰려 고종의 폐위에 가담했다는 혐의를 받고

체포되었다가 탈옥을 했지요.

그러고는 잡혀서 종신형 언도를 받고 5년 7개월 동안 한성감옥서에서 형을 살았지 않습니까?”

창밖으로 신의주의 야경이 펼쳐졌고 서동수의 목소리에도 열기가 더해졌다.

“수감기간 동안 이승만은 ‘독립정신’을 집필했고 ‘청일전쟁’을 번역했으며 영어를 독학합니다.

그리고 29살 때 석방되지요.”

“…….”

“석방된 이승만은 민영환의 주선으로 미국으로 떠납니다.

고종의 밀사 자격이지요.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을 만나 대한제국의 독립을 지켜달라는 부탁을 하려는 것이었죠.”

서동수가 안종관을 향해 빙그레 웃었다.

“1882년 한미수호조약에 따라 미국이 일본에 개입해서 대한제국의 독립을 지켜달라는

청원을 한 것인데….”

그때 안종관이 길게 숨을 뱉고 말했다.

“하지만 이승만이 루스벨트를 만나기 전에 미국은 도쿄에서 가쓰라-테프트 밀약을 했지요.

기가 막힙니다.”

이것이 약육강식의 국제사회인 것이다.

차 안에 정적이 덮였다.

가쓰라-테프트 밀약이란 1905년 7월 29일 일본 총리대신 가쓰라 다로와 미국 육군장관

윌리엄 테프트가 도쿄에서 일본은 미국이 필리핀을 식민지로 삼는 것을 인정하는 대신

미국도 일본이 한반도를 식민지로 삼는 것을 용인한다는 밀약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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