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개와 늑대의 시간

제7장 수난기 13

오늘의 쉼터 2015. 3. 21. 09:45

제7장 수난기 13 

 

 

병달과 공정혜가 만든 속옷은 정조대 속옷이라는 것이었다.

 

속옷의 앞부분이 좌측에서 한번, 그리고 우측에서 또 한번,

그리고 밑에서 위로 올리면서 겹겹이 덮는 형식의 속옷이었다.


“실용적인 면이 떨어지는 거 같지 않습니까?”

 

박장수가 딴지를 걸었다.

 

“실용적인 면이 떨어지는 건 사실입니다.

그리고 찍찍이를 좌우와 위에 하나씩 붙여야 한다는 점도 사실이구요.

그런데 이건 기저귀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겁니다.

정조를 지키자,

하지만 벗을 땐 벗는다.

뭐 이런 개념의 속옷이죠.”

 

재미는 있었다.

 

의외의 속옷은 박장수와 송혜영이 만든 속옷이었다.

 

“이걸 이렇게 돌려보면…”

 

무대로 나간 박장수가 마네킹을 살짝 옆으로 비틀어 세웠다.

어? 그런데 속이 훤히 보이는 것이었다. 일종의 화면보호 필름 같은 속옷이었다.

정면에서 보면 안이 보이지 않지만 보는 사람의 위치에 따라 어떤 때는

안이 훤히 들어다 보이는 속옷이었다.

 

“지금은 딱히 정할 말이 없어서 그냥 보안 속옷이라고 정했습니다.”

 

보안 속옷. 공정혜와 송혜영이 박장대소를 했다.

마지막으로 송혜영이 낸 아이디어는 라인 속옷이었다.

요염함을 테마로 만든 속옷인데 다섯 가지 속옷 모두 요염함을 가득 담고 있었다.

 

“이건 그야말로 선으로만 이루어진 속옷입니다.

가만히 있을 땐 체모가 선 밖으로 빠져 나오지 않지만 걸을 땐 모르겠습니다.

무수한 선의 연결 그게 면이 되었지만 보는 남자의 욕정을 자극하는 속옷입니다.”

 

“뭐, 여기 있는 속옷은 전부 남자의 성욕을 자극하고 있는 걸요.”

 

박장수가 결론적으로 말했다.

 

결국 인간은 성에 천착하기 마련일까?

 태초의 인간으로부터 먼 미래의 인간까지 성욕으로부터 해방될 수는 없을 터였다.

그렇다면 성을 적극적으로 시장 논리에 맞추어야 하지 않을까?

봉수는 고민이 되었다.

 

 

과연 이렇게 성욕을 자극하도록 해서 만든 속옷이 중국 시장에 먹히겠느냐는 것이었다.

다만 한 가지, 어느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고 유일하다는 점만큼은 인정이 됐다.

 

“일단 오늘을 기점으로 각자 맡은 테마대로 몇 가지를 더 만들어 봅시다.

일단은 우리를 그냥 자유롭게 풀어달라고 강 실장한테 얘기를 해야겠습니다.”

 

봉수는 메모하던 노트를 접고 일어났다. 강 실장에게서 호출이 있었다.

 

“일단 출발은 좋습니다.

몇 가지는 그대로 상품으로 내놔도 손색이 없을 듯합니다.

강 실장 생각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봉수는 회의실에서 나와 강 실장 방으로 향했다.

 

복도를 지나 강 실장 사무실로 들어서는 순간, 봉수는 걸음을 멈추었다.

실장실이라는 안내판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기획이사라는 직함이 걸려 있었다.

당연한 결과였다.

 

‘이제 이사님이라고 불러야 하나?’

 

봉수는 이사실로 들어섰다. 비서실 분위기도 달라졌다.

남자 직원이 한 명 더 배치되어 있었고 바닥에 깔린 카펫도 더 환하고 화려해져 있었다.

봉수는 입맛을 다셨다.

 

“저는 김필구라고 합니다. 기획이사님의 비서실장으로 발령을 받아 왔습니다.”

 

남자가 인사를 했다.

봉수도 그에게 인사를 했다.

 

“먼저 손님이 있으신데 일단 말을 넣어 보겠습니다.”

 

봉수는 소파에 앉아 강 이사실로 들어가는 방문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특수개발부의 박봉수 팀장이 와 있습니다.”


김필구는 이미 봉수에 대해 완전히 파악을 하고 있는 듯했다.

 

“들어오시랍니다.”

 

봉수는 사무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응접 소파에 웬 여자가 보라색의 짧은치마를 입고 앉아 있었다.

강 이사의 얼굴이 전에 없이 환했다.

아니 환하다기 보다 몹시 흥분해 있는 듯했다.

 

‘어쩐 일이지?’

 

회사 내에서 강 실장, 아니 이제는 강 이사가 된 그의 웃는 낯을 보기란

말없이 사라진 사장 얼굴 보기만큼 힘든 일이었다.

 

“어서 오세요.”

 

강 이사가 손짓을 했다.

봉수는 그에게 목례를 하고 여자 맞은 편 쪽 소파로 다가갔다.

여자가 고개를 돌려 봉수를 쳐다봤다.

순간 봉수는 심장이 멎는 느낌이었다.

봉수의 첫 사랑, 바로 신수정이었다.

하지만 봉수는 강 이사와 신수정의 은밀한 관계에 대해선 알지 못했다.

그녀의 출현이 충격적이긴 했지만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1년 전쯤에 회사 직원들이 모두 신수정이 소개했던 보험을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강 이사 앞에 앉아 있는 건 의외였다.

 

“오랫만이다.”

 

신수정은 어제 보았던 사람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그녀도 세월을 이기지는 못하는 모양이었다.

웃는 눈가에 미세하게 주름이 잡혀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매혹적이었다.

 

“그, 그렇네요.”

 

봉수는 반말을 해야할 지 아니면 존댓말을 해야할 지 감을 잡지 못했다.

 

“동창끼리 무슨 존댓말이야.”

 

“참, 박봉수 팀장하고 수정씨하고 대학 동창이지.”

 

신수정의 오른편에 앉아 있는 강 이사는 더 이상 차갑고 날카롭지 않았다.

그는 신혼 첫 날 밤, 신부가 방으로 들어오기를 고대하는 시골 총각처럼

입가에 잔뜩 웃음을 달고 있었다.

 

봉수는 차마 강 이사나 신수정을 쳐다보지 못해 수첩에 눈길을 두었다.

 

“아이디어가 나왔다면서요?”

 

봉수는 놀라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회사 사람이 아닌 외부인들이 있는 자리에서는 일체 회사의 어떤 이야기도 꺼내지 않던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신수정하고 강 이사가 그렇게 가까운 사인가?’

 

봉수는 괜한 질투심이 끓어올랐다.

그러다 속으로 피식 맥없이 웃고 말았다.

남편도 아닌 주제에 자신이 왜 질투를 하는가 싶었다.

그러고 보니 신수정의 남편이 오래 전에 사고로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게 떠올랐다.

 

“네, 몇 가지 파격적인 아이디어가 나왔습니다.”

 

“보고해 봐요.”

 

신수정이 빙글빙글 미소를 지었다.

 

“여, 여기서요?”

 

“수정씨는 괜찮아요. 혹시 압니까? 수정씨가 더 좋은 아이디어를 내 줄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강 이사는 자세를 바꾸어 앉았다.

흥분해 있는 듯했다.

예전의 강 이사에게선 전혀 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다.

 

‘설마 수정이하고 둘이서 그렇고 그런 관계?’

 

봉수는 자신도 모르게 신수정의 하얀 무릎을 쳐다보았다.

대학 시절의 그 뽀얗던 피부 그대로였다.

 


봉수는 수정의 눈치를 보며 회의 시간에 나온 샘플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풍차바지식, 클리토리스, 정조대, 보안, 라인. 이렇게 해서 다섯 가지의 아이디어가 나왔습니다.”

 

봉수의 설명이 끝난 후 강 이상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흡족한 결과가 아니었던 듯했다.

 

“수정씬 어떤 거 같아?”

 

“제가 뭘 아나요?”

 

“그래도 감이라는 게 있잖아.

여자의 감. 그리고 내가 보기에 수정씬 옷 입는 감각이 보통의 여자들과는 수준이 다르잖아.

그러니까 속옷을 입는 감각도 다르지 않을까?”

 

강 이사는 친한 친구 대하듯 신수정에게 말을 걸었다.

봉수는 앉아 있기가 불편했다.

신수정에게 자신의 짝사랑을 고백하지는 못했지만 누군가의 입을 통해 한번쯤은 들었을 것이다.

싱글벙글 웃는 그녀의 표정으로 보아 그런 봉수의 과거를 알고 있는 듯했다.

 

“이사님도 참.”

 

신수정이 가볍게 강 이사의 어깨를 쳤다.

보통 사이가 아니라는 증거였다.

아무리 둔한 사람이라고 해도 충분히 눈치를 챌 수 있을 정도의 행동이었다.

봉수는 어서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말해 보라니까. 혹시 알아?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 수도 있잖아.

그리고 불현듯 떠오른 아이디어가 좋은 상품이 될 때가 많아.

우리 개발부에서 짜낸 아이디어 어때?”

 

강 이사는 아이들처럼 자꾸 재촉했다.

그런 강 이사 때문에라도 얼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싶었다.

 

“정 그러시다면…”

 

신수정이 자신의 앞에 놓인 녹차 잔을 들었다.

 

“중국 여성들의 취향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냥 여자로서의 감만 놓고 생각해본다면 조금씩 보완을 해야겠지만 좋은데요.”

 

“정말 그래?”

 

강 이사의 이마에 주름이 졌다.

 

“그래요, 전 세계에서 유일한 속옷들이잖아요.

그리고 이건 제 생각인데 이렇게 만든 속옷은 고가 정책으로 나가는 거예요.

그래서 정말로 나만이 보유한 유일한 속옷이라는 개념을 심어주는 게 어때요?

이 속옷을 입어야만 비로소 중국 내에서 중산층이 된다,

혹은 부유층이 된다 그런 개념으로 말이에요.

그러려면 한 가지 더 구색을 맞추어야 할 거 같아요.”

 

강 이사는 매우 진지하게 신수정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속옷 전문 회사의 기획 이사가 보험설계사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는다는 게

봉수의 생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구색을 맞춘다면 어떻게?”

 

“중국하면 비단이 먼저 생각나지 않아요?”

 

“그래, 비단.”

 

“비단의 느낌이라면 야들야들하고 매끄럽고 부드럽고… 어느 땐 매혹적이기도 하고 그렇잖아요.

그 느낌을 속옷에 살리면 어떨까요?

그걸 마치 반바지처럼 아주 헐렁하게 만드는 거예요.

허리 라인은 딱 맞지만 그 아래엔 손이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헐렁하게 말이죠.

슬립 같은 느낌인데 슬립보다는 조금 더 고급스러운 느낌.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은데요.”

 

신수정이 어떤 생각을 한 것인지 봉수로서는 짐작이 되지 않았다.

 


 “박 팀장 한번 만들어 봐요.

지금 나온 아이디어하고 같이 진행을 해 봅시다.

수정씨는 감이 좋은 여자거든.”


감이 좋은 여자라? 봉수는 강 이사의 말이 매혹적인 여자라는 말처럼 들렸다.

그런데 밑도 끝도 없이 비단 같은 느낌의 속옷이라니.

봉수는 난감했다.

이미 그런 류의 속옷은 이미 나와 있을 뿐더러 슬립으로도 그런 느낌을 충분히 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신수정이 하는 이야기는 중국 전통 속옷을 두고 하는 말인 듯했다.

그런 류의 속옷은 이젠 구식이었다.

 

“과거 중국 여성들이 입었던 속옷을 떠올리고 한 게 아닌지요?”

 

봉수는 여전히 신수정에게 말을 놓을 수 없었다.

 

“그런 게 아니라 말하기가 좀 부끄러운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신수정의 얼굴이 갑자기 붉어졌다.

 

“수정씨 괜찮아요, 허심탄회하게 말해요.

만약에 수정씨 아이디어가 중국에서 대박 터트리면 내 커미션 두둑이 챙겨주리다.”

 

강 이사는 오늘따라 의외의 모습들을 두루 보여주고 있었다.

봉수의 짐작대로 강 이사는 신수정에게 푹 빠져 있는 게 분명했다.

 

“제가 말하는 건 치마 개념이 더 강한 속옷이에요.

왜 수영장에 가면 치마처럼 앞을 두르는 그런 수영복 있잖아요.

그걸 속옷으로 바꾸어서 생각해보는 거예요.”

 

“그게 무슨 변별력이 있겠습니까?”

 

봉수는 마지못해 신수정에게 물었다.

이제 그녀는 봉수에게 존댓말을 쓰지 말라는 말을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치마인데 안에는 거의 없는 거죠.

최소한만 가리는 거예요. 앞이랑 뒤랑. 치마가 속옷인 거죠.

그런데 그 치마를 바지를 입었을 경우에 걸림이 없을 정도로 짧으면 좋구요.”

 

봉수는 머리를 굴려 보았다. 상상이 갔다.

과연 시장성이 있을까 의심이 되었다.

치마식의 속옷이라면 신수정의 말대로 바지 입을 때 보통 불편한 게 아닐 터였다.

게다가 최소한만 가리는 속옷이라고 말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그러면 아예 그냥 치마만 두르고 다니게 하지. 노팬티 개념으로.”

 

강 이사가 봉수의 의구심을 대신해 주었다.

 

“치마를 입을 땐 상관없지만 바지를 입으면 아무래도 밑이 터져 있으면 불편하죠.

그러니까 제 말은 여자의 거시기 부분만 가릴 수 있게 해 주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죠?”

 

“거시기?”

 

“그래요, 거시기.”

 

강 이사가 껄껄거렸다.

봉수는 어이없어 웃고 말았다.

 

“박 팀장 아무튼 한번 만들어 봐요.

재미있을 거 같으니까. 소재는 비단으로 하고. 비싸기는 하겠지만

저렴한 속옷과 함께 약간은 고급스러운 속옷을 한벌쯤 만들어 나가는 것도 괜찮을 듯 싶군.”

 

봉수가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신수정이 내놓은 아이디어라고 해도 결국엔

강 이사의 결정이 떨어진 그의 아이디어인 셈이었다.

거절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했다.

 

“네, 알겠습니다.”

 

봉수가 소파에서 일어났다.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아 걱정을 했는데…

개발팀의 아이디어가 수정씨의 감에 좋다니까 나도 기분은 좋군요.

오늘 저녁 간단하게 회식이나 할까요?”

 

점점 강 이사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갔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병달이 봉수의 이야기를 들은 후 발끈했다.

 

“우리 아이디어만 소화하기도 힘든 판국에 그런 걸 하라니.”

 

병달이 투덜거렸지만 봉수는 내놓고 강 이사를 비난하지 않았다.

 

“뭐요, 괜찮은 아이디어 같기도 한데요.”

 

병달과 달리 공정혜가 의외로 수긍을 했다.

 

“아니, 공정혜씨는 그 치마 같은 속옷이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는 겁니까?”

 

“나쁘지 않죠. 치마 입을 때 입으면 되잖아요.

속옷을 만들면서 여자들 생리를 그렇게 모르세요.

종류도 다양하고 색깔도 다양하면 좋고 그리고 뭐 가끔은 섹시한 속옷도 입고 싶을 때가 있어요.

남자들처럼 그냥 속옷에 신경 안 쓰고 입는 게 아니란 말이에요.

그리고 몸매 좋은 여자들은 자신을 은근히 드러내기를 바란다구요.”

 

“그 점엔 저도 동감이에요.”

 

의외로 애란까지 신수정의 아이디어를 거들고 나왔다.

그렇다면 봉수의 생각이 진부한 것일까?

봉수는 그래도 여전히 고개를 가로 저었다.

이제 9일 정도 남은 시간으로 외부 사람들의 아이디어까지 모두 소화해낼 수 있을 지 의문이었다.

 

사무실에선 남자와 여자로 나뉘어 의견이 분분했다.

그러는 사이 강 이사가 신수정과 함께 사무실에 나타났다.

사무실은 일시에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자자, 오늘은 간단하게 술 한잔씩 합시다.

이번 자리엔 저도 참석하고 여기 아이디어를 내신 분도 참석을 할겁니다.”

 

귀에 걸린 강 이사의 입이 여전히 내려가질 않았다.

봉수는 신수정과 잠깐 눈길이 마주쳤다.

신수정은 얼른 고개를 돌렸다.

 

생각하지도 않았던 회식 자리가 마련되었다.

예전의 강 이사였다면 이번 프로젝트가 끝나기 전까지 술자리를 마련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래서 봉수는 물론이고 애란 역시 그가 이해되지 않았다.

 

고려호텔의 지하 나이트 클럽 동백룸.

룸안에는 작은 미니 바는 물론 밴드까지 갖추어져 있었으며 무대 또한 제법 넓었다.

방이라기 보다 독립된 하나의 술집 같았다.

 

“프로젝트 끝날 때까지 오늘만 술 먹는 겁니다.

여기 계신 분 말이 너무 쪼아도 아이디어라는 게 나오질 않는다는군요.

그래서 내린 결정이니 부담 갖지 마세요.

그리고 프로젝트 끝날 때까지 딱 오늘 하룹니다.”

 

강 이사는 오늘 그 답지 않은 모습을 여러 차례 보여주었다.

애란이나 봉수에게 강 이사는 신기할 정도였다.

 

“강 이사 저 여자한테 맛이 간 모양입니다.”

 

오른편에 앉아 있던 병달이 봉수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병달의 말에 봉수는 괜히 기분이 상했다.

자신의 첫사랑이 불륜으로밖에 말할 수 없는 관계의 중심에 놓여져 있다는 말이 불쾌했던 것이다.

 

강 이사는 가볍게 술을 마시자며 양주를 시켰다.

발렌타인이 나왔다.

병달은 술을 보자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술잔을 돌렸고 강 이사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는 박장수나 공정혜, 그리고 송혜영은 그저 즐거운 표정이었다.

애란과 화련, 그리고 봉수만이 불안하게 서로를 쳐다보았다.

 

술은 부드럽게 넘어가질 않았다.

강 이사와 신수정이 무슨 말을 나누는지 깔깔거렸다.

봉수는 보기가 불편했다.

봉수는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 역시 방안에 있었지만 역시 호텔 화장실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깨끗하고 넓었다.

봉수의 작업실보다 더 화려하고 넓었다.

 

“이런 데 처바를 돈 있으면 노숙자라도 하나 구제해 주지.”

 

봉수가 물건을 꺼내놓고 투덜대고 있을 때 누군가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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