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수난기 14
“박봉수!”
신수정이 봉수의 등을 찰싹 때렸다.
봉수는 놀라 바지 지퍼를 급하게 올리는 바람에 그만 털이 지퍼 사이에 끼고 말았다.
털이 뽑혀 따끔했다.
“여, 여긴 남자 화장실인데요.”
봉수는 따끔한 통증을 느꼈지만 내심 괜찮은 척했다.
신수정의 얼굴은 불그스름했다. 이렇게 만날 일은 아니었다.
첫 사랑이었으니 보다 근사한 해후를 꿈꾸었는데 단 둘이 만난 게 화장실이라니.
“너는 정말 끝까지 존댓말 할래?”
신수정이 세면기 위의 거울을 들여다보며 입을 삐죽거렸다.
“그게 아니라, 여긴 남자 화장실이라는 말이지.”
봉수는 어정쩡하게 대꾸했다.
“우리 정말 오랜만이지?”
신수정은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게.”
그제야 봉수는 찬찬히 신수정을 뜯어보았다.
신수정도 늙긴 늙었지만 예전과는 다르게 몸이 잘 익었음을 느끼게 만들었다.
특히 예전보다 엉덩이가 아름답고 탄력이 느껴졌다.
“너, 지금 내 엉덩이 봤지?”
친한 사람들 앞에서는 말을 가리지 않고 하는 모습은 예전 그대로였다.
봉수의 마음도 조금은 부드러워졌다.
“아, 아냐.”
봉수는 손사래를 쳤다.
“에이, 거짓말. 거울로 다 보였어.”
봉수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봐, 얼굴까지 빨개지잖아.”
대학 시절 알았던 신수정이 발랄하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 안하무인이었나 싶었다.
“일단 나가자.”
봉수는 자신도 모르게 신수정의 손목을 잡고 남자와 여자 화장실로 나뉘는 홀로 끌고 나왔다.
“봉수씨!”
홀로 나온 후 신수정은 정색을 하며 봉수를 자신 쪽으로 돌려세웠다.
봉수의 눈앞에 오랫동안 열병을 앓게 만들었던 여자가 서 있었다.
한번만 안아보기를 애타게 기원했던 여자가 말이다.
봉수는 심장이 벌렁거렸다.
지금 눈앞에 서있는 신수정이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나 이상하게 생각하지?”
아줌마처럼 굴던 말투는 사라지고 어느새 잔뜩 감정이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이상하게 생각하다니?”
“강 이사님이 오늘 승진했다고 해서 축하해 주려고 들린 거야.
전에 보험도 많이 들어주셨고 해서 말야. 참, 나 보험 설계사 하는 건 알고 있었지?
그래 알았을 거야. 아빠 사업 망하고 남편 죽으니까 세상 사람들 나랑 엄마한테서 등 돌리더라.
그런 게 세상인가봐. 너도 알 거야. 나 보험 설계사 같은 거 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어.
그래서 동창들은 잘 안 만나. 그런데 널 보니까 왜 그런지 맘은 편하다.”
봉수에게는 마음이 편한 이유를 설명해 주고 싶었다.
봉수가 그녀를 사랑했기 때문이라는 걸 말해 주고 싶었다.
신수정이 봉수를 빤히 올려다 보았다.
눈가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혀 있었다.
문득 백일홍이 떠올랐다.
봉수와 신수정이 다녔던 대학의 캠퍼스엔 백일홍이 많았다.
백일홍이 활짝 핀 나무 아래의 벤치에 앉아 아무런 티없이 활짝 웃던 신수정의 얼굴이
봉수의 눈에 아른거렸다.
죽을 때까지 저 미소를 간직하고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여자가 강 이사와 함께
나타나서는 술집 화장실에서 눈물을 보이고 있었다.
봉수는 신수정을 와락 끌어안고 말았다.
마음속에서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자제할 수가 없었다.
신수정도 기다렸다는 듯 봉수의 품에 뛰어 들었다.
화장실 밖에서는 밴드의 음악 소리에 맞추어 병달이 강산에의 노래를 목이 터져라 부르고 있었다.
“너, 내가 사랑했던 건 알고 있었니?”
화장실 안에서 묻기에는 부적절했지만, 지금이 아니면 그걸 물을 순간이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알고 있었어. 하지만 우리 그이가 나한테 먼저 손을 내밀었잖아.”
신수정은 마치 봉수가 먼저 사귀자는 말을 하지 않아 그렇게 되었다는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봉수는 신수정 앞에 나설 수 없었다.
신수정의 죽은 남편과 봉수는 너무도 판이하게 다른 환경의 사람이었다.
대학 시절부터 제법 값나가는 자가용을 끌고 다녔던 신수정의 남편을 봉수는 부러워하기만 했다.
잘 생긴 외모에다가 좋은 집안, 부유한 가정, 좋은 매너와 분명한 성격.
신수정의 남편을 많은 여자들이 좋아했다.
신수정 역시 그렇게 죽은 남편을 좋아했던 것이다.
봉수는 그걸 탓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거짓말은 하지 않기를 바랬다.
그래도 그녀의 말을 믿고 싶었다.
“우리 이 자리 끝나고 다시 만날까? 자리 끝나면 바로 연락하자. 내 번호야.”
신수정은 미리 준비를 했던 명함을 봉수의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봉수의 가슴속에 스릴과 긴장이 넘쳐흘렀다.
누구보다 강 이사와 애란이 마음에 걸렸지만 총각인 마당에 그들을 염두에 둘 필요는 없었다.
봉수는 그녀의 청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녀가 봉수의 품에서 막 떨어져 나올 무렵 화장실 문이 열리며 애란이 들어왔다.
“두 사람 모두 화장실에 있었어요?”
애란이 신수정과 봉수의 눈치를 빠르게 살폈다.
“어, 막 나가려던 참이었어요.”
신수정이 재빠르게 화장실에서 나갔다.
“봉수씨, 뭔가 썸씽이 있었던 거 같은데?”
애란이 눈을 흘겼다.
“썸씽은 무슨 썸씽.”
봉수는 말끝을 흐리며 화장실에서 나갔다.
뒤통수에 애란의 눈길이 느껴졌다.
‘이런 중요한 때에 하필이면 신수정이 나타나다니.’
봉수는 강 이사 곁에 바짝 앉아 있는 신수정을 힐끔 건너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봉수가 중심을 잡지 못하면 이 프로젝트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애란이 팀장이지만 실질적으로 특수개발부가 돌아가는 건 봉수에 의해서였다.
봉수는 잔을 홀짝홀짝 들이켰다. 술을 마셔도 취기가 오르지 않았다.
애란이 화장실에서 돌아왔고 오랜만에 술을 마신 팀원들은 적당히 취해갔다.
“박 팀장, 그리고 노 팀장. 이번 프로젝트 잘 부탁합니다.”
술값을 계산한 뒤 강 이사는 봉수와 애란의 손을 강하게 잡고 흔들었다.
강 이사의 등뒤에 서 있는 신수정이 은밀한 눈길로 봉수를 쳐다보았다.
“오늘은 푹들 쉬시고 내일부터 허리띠를 조여 봅시다.
저도 내일부터는 일정 부분을 담당해서 여러분들을 돕겠습니다.”
강 이사는 일일이 팀원들과 악수를 한 뒤 신수정을 데리고 사라졌다.
신수정의 전화가 걸려온 건 강 이사와 사라진 후 한 시간이나 지나서였다.
봉수가 전화를 걸었을 때 잠시 뒤에 전화를 하겠다던 여자가 한 시간이나 기다리도록 만든 것이다.
팀원들은 이미 모두 돌아갔다.
봉수는 나이트 클럽에서 나와 혼자 ‘마다카스카르’라는 작은 바에 들어와 맥주를 홀짝거리고 있었다.
첫사랑을 오붓하게 만날 수 있겠다는 기대로 이제나저제나 기다렸는데 한 시간이 흐른 뒤에
전화를 걸어왔다.
“많이 기다렸지?”
다시 또 기다리라는 걸까?
봉수는 내심 걱정이 되었다.
한편으론 질투가 나기도 했다.
어쨌든 지금까지 강 이사와 함께 있었을 테니 말이다.
시계를 보니 11시가 지나고 있었다.
“별로.”
“한 시간도 훨씬 지났잖아.”
“이번 프로젝트 때문에 생각할 것도 많고… 그래서 시간 가는 줄 몰랐어.”
봉수는 능글맞게 거짓말을 했다.
신수정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한 일이라면 살인도 마다하지 않을 기분이었다.
그러다 피식 웃고 말았다.
지금의 박봉수에게는 청년 시절의 무모한 열정은 사라지고 없었다.
“왜 웃었어?”
“아냐, 그냥 옛날 생각이 나서.”
“그나저나 어쩌지? 한 10분 쯤 더 기다려야 할 거 같아.”
나긋나긋한 목소리. 10여 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목소리는 여전했다.
봉수는 오랜만에 기다림의 즐거움에 젖어들었다.
“알았어. 30분쯤 늦어도 상관없어.”
“정말?”
신수정은 정말로 30분이나 늦게 바에 나타났다.
1시간 30분을 기다린 셈이었다.
하지만 봉수는 그녀와 단 둘이 앉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너무 미안해, 오랜만에 만나서 이렇게 늦게까지 기다리게 만들어서.”
신수정은 시계를 들여다보며 미안해 했다.
신수정은 의자를 바짝 당겨 봉수의 곁에 앉았다.
봉수는 그녀를 잠깐 훔쳐보았다.
신수정은 봉수에게 눈길을 주지 않은 채 바의 진열장만 쳐다보았다.
‘아까 나이트에서 나던 향수와 냄새도 다르고 화장도 고쳤네.’
봉수는 짧은 시간에 그녀의 변화를 파악했다.
여자 속옷을 만들다보니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직감적으로 관찰하는 힘이 는 덕이었다.
하지만 별로 기분은 좋지 않았다.
그녀의 변화로 유추할 수 있는 건 뻔하기 때문이었다.
어디 가서 강 이사와 뒹굴다가 이제야 나타났다는 말일 터였다.
그래도 봉수는 궁금했다.
1시간 30분 동안 그녀는 어디에서 뭘 했단 말인가.
부질없는 질투심이 일었다. 봉수는 맥주병을 들고 반쯤 비웠다.
“내가 너무 늦어서 화났니?”
“아냐.”
“그런데 왜 술을 그렇게 마셔?”
“이사님이랑 양주를 먹었더니 갈증이 더 심해져서 그래.”
봉수는 가능한 한 신수정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다.
그런 자신이 우스웠지만 한편으로는 행복하기도 했다.
코지에 입사한 뒤로 만나고 섹스를 했던 여자들이 신수정을 만나게 해주기 위한
전조였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오빠, 전화 받으세요.”
봉수의 휴대폰 벨 소리였다.
“오빠, 전화 받으세요.”
전화를 건 사람은 애란이었다.
이미 짐작했던 일이었다.
모두 돌려보내고 혼자 일이 있다고 빠졌으니 애란이 당연히 궁금해할 터였다.
“미안해요, 개인적인 일이라서…”
“봉수씨 정말 이상하시네. 나 말고 또 다른 여자 만나요?”
순간 봉수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애란에게 이런 소리를 듣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제가 너무 주제넘었나? 하긴 저야 뭐 마누라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식 애인도 아닌데 제가 뭘 어쩌겠어요. 안 그래요?”
답을 해줄 수 있는 질문이 아님에도 애란은 물었다.
난처했다.
봉수는 곁에 앉은 신수정을 곁눈질로 쳐다봤다.
“저 같은 노처녀가 무슨 복이 있겠어요.
좋아하던 남자는 다른 여자가 있어서 절 쳐다보지도 않고
어렵게 어렵게 좋아하게 된 남자는 많은 여자들이 다 좋아하고.
내 인생이 왜 이럴까요?”
봉수는 조금씩 귀가 따가웠다.
평소의 애란에게서는 전혀 보지 못했던 모습이었던 것이다.
말도 많지 않았고 괜한 질투 따위는 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생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게다가 애란이 다른 여자 때문에 질투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제 직감인데요, 아까 강 이사랑 같이 오셨던 여자분 말이에요. 그 분 잘 알고 지내던 분이죠?”
봉수는 가슴이 뜨끔했다.
곁에 앉아 있던 신수정은 맥주 마시는 일에만 열중했다.
“지금은 강 이사님 애인이죠?”
봉수는 애란의 목소리가 휴대폰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손으로 감싸쥐었다.
“애란씨가 그런 거 신경 쓸 필요 없잖아요.”
봉수는 가능한 부드러운 어조로 대꾸했다.
“그러게요. 제가 왜 남의 애인한테 신경을 쓰죠? 하지만 억울해요.
남들은 결혼해서도 애인 만들어서 사는데 저는 이게 뭐죠?”
애란은 통화를 언제 끝낼 것인가?
봉수는 조금씩 짜증이 났다.
“저, 지금 친구와 이야기 중이거든요.”
“어머, 그러셨어요. 진작에 말씀하시지. 그럼 내일 뵐게요.”
애란은 의외로 순순히 전화를 끊었다.
“전화한 사람이 팀장이지?”
“응, 그래”
“흠, 널 좋아하고 있구나.”
신수정이 입술을 삐죽거렸다.
봉수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지레짐작하는 게 아니라면 신수정은 애란에 대해 질투를 느끼고 있었다.
“그런 여자 나도 잘 알아. 남자들은 잘 몰라.
연애할 때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결혼하면 180도 달라지는 유형의 여자야.
내가 너를 걱정해서 해주는 말인데 그 팀장이라는 여자와는 가까이 하지마.”
섹스까지 한 사이임에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는데 신수정은
단 한번 얼굴을 마주치고 어떻게 한 인간을 파악할 수 있단 말인가?
못 먹을 감 찔러나 보겠다는 심정의 질투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말 쉽게 흘려 듣지 마. 그런 유형의 여자에 대해 한번 말해볼까?”
신수정은 맥주병을 들고 봉수 앞에 놓인 병에 부딪혔다.
병끼리 부딪히며 맑은 소리를 냈다.
“그런 여자는 말야. 처음에 보면 정말 요조숙녀 같지.
조신하고 매너 좋고 마음 넓고 말야.
여자들이 봐도 정말 부처님 마누라 같은 여자지. 안 그래?”
봉수는 진지하게 애란과 함께 지내왔던 시절들을 떠올려 보았다.
신수정의 말대로 늘 조용하고 말없이 묵묵히 제 할 일만 해 왔던 여자였다.
하지만 그게 무슨 흠이 된단 말인가?
“그런데 일단 자신의 사정권 안으로 들어오면 돌변하는 여자 유형이야.
본격적으로 애인이 되었다 싶으면 한편으로는 무지 잘 해주지만 한편으로는
무지 구속하는 그런 스타일의 여자야.
그걸 사랑이라고 착각을 하지. 소유일 뿐인데 말야.”
신수정이 남은 술을 마저 비우고 한 병을 더 주문했다.
“공주처럼 살던 애가 어떻게 사람에 대해 그렇게 빠삭하게 알고 있냐고 묻고 싶지?”
신수정의 목소리에 긴장이 사라졌다.
그녀의 얼굴 위로 자조적인 미소가 흘렀다.
“봉수 너도 알고 있겠지만 아빠 사업 망해서 쓰러지고 결혼한 남편은 교통사고로 죽고 나니까
내가 헛살았다 싶더라고. 순간 뒤돌아 보니까 나는 아무 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었던 거야.
남들이 생각하듯 난 공주처럼 살았거든.
그래도 어쩌겠어. 먹고 살아야 했지.
기술도 없고 자격증도 없고 얼굴 하나 믿고 학교 성적도 별 볼일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신수정이 한탄을 할 때가 다 있군. 봉수는 씁쓸했다.
첫사랑이 초라한 모습으로 자신 앞에 앉아 있는 게 불쌍하기도 했다.
메이 퀸이었던 여자가 속옷 회사의 실장과 섹스를 해야 할 정도로 타락했다는 걸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자존심은 버릴 수 없겠더라고. 처음엔 술집을 생각했어.
그리고 그런 유혹도 있었고.
우리 여자 선배 중에 강남에서 제법 큰 요정을 운영하는 선배가 있어.
확실히 큰손이라 정보가 다르더라. 우리 집이 망한 것도 알고
내 남편이 죽은 것도 꿰고 있더라고. 키워주겠다고,
그리고 세상에 복수하게 해주겠다고.”
봉수는 그녀의 삶을 듣고 있는 동안 진지했다.
“그런데 차마 술집 여자가 될 순 없었지.
그랬다면 어느 술집에선가 너를 만났을 지도 모를 일이야.
하지만 역시 술집 여자가 될 순 없었어. 그래서 택한 게 바로 보험설계사야.
그 역시 처음엔 쉽지 않았어. 말주변도 없고 숫기가 많은 것도 아니었고
일이라고는 해 본 적도 없었잖아.”
신수정의 말투는 산전수전 다 겪은 선술집 마담의 말투 같았다.
그러고 보면 사람의 운명이라는 건 한 순간에 그녀처럼 뒤바뀌는 속성이 있는 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인간에게는 다가올 운명을 피해갈 수 없다는 말일까?
봉수는 마음속으로 고개를 가로 저었다.
“수정아, 나는 말야.”
봉수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내 말 끝까지 들어.”
신수정이 맥주병을 들고 들이켰다.
그녀의 볼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취기를 느끼는 지 그녀의 몸이 휘청거렸다.
봉수가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 아니면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다른 무엇. 그게 필요하다는 걸 느꼈지.
내 몸 말야. 말 주변도 없고 인맥도 없고, 있다고 해도 아는 사람 앞에 나서지 못하니까,
내가 보험설계사를 해서 성공할 수 있는 길은 내 몸밖에 없다는 결론이 내려지더라.
어차피 죽어 없어질 몸이다 싶기도 하고. 그 뒤로 난 남자들만 영업상대로 골랐어.
그리고 그들이 원하면 얼마든지 벗었지.
그렇다고 싸구려 창녀 취급은 하지마. 그래도 난 큰 건수를 올릴 때나 벗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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