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유혹

(117) 껌 같은 사랑-11

오늘의 쉼터 2015. 3. 1. 12:41

(117) 껌 같은 사랑-11

 
 

 

 
 
유미는 개운치 않은 기분으로 택시를 타고 미술관으로 다시 돌아왔다.
 
사무실에는 이미 점심시간도 한참 지났는데 알바생만 있고 텅 비어 있었다.
 
새끼 큐레이터 송민정이랑 박용준이 안 보인다.

“송큐랑 박 팀장 어디 갔어요?”

“모르겠어요. 함께 점심 식사 한다고 나갔는데 아직 안 돌아왔어요.”

“프랑스 화랑하고 독일 화랑 계약서 초안 잡은 거 좀 가져와 봐요.”

여대생 알바인 보람이가 머뭇거렸다.

“민정 언니가 아직 정리를 못한 거 같던데….”

“아니, 도대체 일을 하는 거야? 마는 거야?”

가뜩이나 좋지 않은 기분이 급강하했다.

“휴대폰 해봐요.”

“둘 다 꺼져 있던데….”

그때 두 사람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둘 다 술이 취했는지 얼굴이 발그레하다.
 
유미를 보자 박용준이 일순 긴장했다.
 
그러나 송민정은 헤실헤실 웃었다.
 
용준이 머릴 꾸벅하며 변명했다.

“오 실장님, 죄송함다.
 
오늘 식당에서 특별행사로 와인을 한 병 서비스하더라고요.
 
근무 중이라 안 마시려 했는데….”

그때 송민정이 끼어들었다.

“제가 마시자고 했어요.”

“근무 중에 일은 팽개치고 술을 마셨다?”

“뭐 잘못됐나요? 기분 좋게 일하면 될 거 아니에요.”

“송민정씨, 직장이 무슨 프렌즈 클럽 같은 덴 줄 아나 본데….”

“그럼 실장님은 점심시간 꼬박 꼬박 지키세요?”

아니, 어린 게 어디서 꼬박꼬박 말대꾸야.
 
유미는 화가 치미는 걸 누르며 말했다.

“나하고 송민정씨하고 같아요? 나야 대외적인 일도 있고.”
 

“대외적인 일이라고요? 그런데 실장님, 귀고리가 한 짝 없네요.”

송민정이 깔깔댔다.

 

유미가 얼른 손으로 귀를 만져보았다.

 

오른쪽 귀가 허전했다.

 

호텔의 룸에 떨어졌나…?

 

급히 나오느라 제대로 거울을 챙겨볼 틈도 없었다.

 

이럴 때일수록 틈을 주면 안 된다.

“아이 참, 싸구려 귀고리는 이런 게 문제야.

 

어머나, 그러는 민정씨는 치마 지퍼선이 돌아가 있네.

 

어디가 앞이야? 그리고 박 팀장 와이셔츠 깃에 묻은 게 뭐야?”

무조건 이렇게 질러본다.

 

아니나 다를까.

 

송민정이 당황해서 치마허리를 다시 여미고 용준은 와이셔츠 깃을 보려고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돌려대고 있다.

 

와이셔츠 깃은 고개를 숙여도 잘 보이지 않는다.

 

지레 답답해진 용준의 얼굴이 붉어진다.

 

둘이 찔리는 게 분명 있다.

“회사는 일을 하는 곳이지 남녀상열지사를 하는 곳이 아닙니다.

 

뭐 그것도 일은 일이지만, 입술도장 같은 거 임자 있는 남자 옷에 콱콱 찍는 거 아니에요.

 

처녀가 머리털 다 쥐어뜯겨요.

 

 계약서 초안 한 시간 내로 제대로 완성해서 내 방으로 가져와요.”

그렇게 야무지게 내지르고는 유미는 자신의 방으로 문을 소리나게 닫고 들어갔다.

 

박용준을 충견으로 키우려던 애초의 계획이 잘못된 걸까?

 

개도 혈통 나름인 걸까?

 

족보 있는 개가 아닌 똥개는 어쩔 수 없나?

 

가문의 후광을 믿고 날뛰는 하룻강아지 송민정보다도 유미는 박용준이 더 기분 나빴다.

 

그때 노크를 하고 박용준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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