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 껌같은 사랑-1
3월인데도 함박눈이 내렸다.
어젯밤부터 내린 눈은 아침이 되자 솜이불 몇 채를 쌓은 것처럼 높다랗게 쌓였다.
올겨울은 정말 눈이 푸지게 왔다.
꽃샘추위인지 기온마저 영하로 내려가서 길이 얼어 차를 끌고 나가기 곤란했다.
하필 오늘은 정말 바쁜 날이다.
어제 밤이 새도록 밀린 라디오 녹음 원고를 쓴 데다 오늘 아침부터는 대학이 개강이다.
어제 밤이 새도록 밀린 라디오 녹음 원고를 쓴 데다 오늘 아침부터는 대학이 개강이다.
오후에는 문화센터에 특강까지 있는 날이다.
게다가 출근은 안 하더라도 짬짬이 윤조미술관 일로 보고도 받고 국제전화도 받아야 한다.
윤조미술관 개관 기념전을 국제전으로 준비하다 보니
시차가 달라서 밤에도 통화할 일이 생겼다.
그런 일을 박용준이나 대학을 갓 졸업한 막내 여사원 송민정이 좀 잘하면 좋으련만….
박용준은 어학엔 젬병이고, 송민정은 요즘 젊은 애답게 영어를 좀 하지만,
불어권 화랑과의 업무엔 어쩔 수 없이 유미가 나서야 했다.
‘사는 게 왜 이리 피곤한 것이냐. 내 인생, 구조조정을 좀 해야 하는 거 아닐까.’
너무나 많은 일들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내게, 내 인생에 들러붙어 있다.
‘사는 게 왜 이리 피곤한 것이냐. 내 인생, 구조조정을 좀 해야 하는 거 아닐까.’
너무나 많은 일들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내게, 내 인생에 들러붙어 있다.
다 정리하고 엄마가 남겨 준 땅에 오두막이나 한 칸 짓고 살까나.
인생 뭐 있어. 결국은 빈손, 무소유…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는 피곤한 요즈음이다.
하지만 이것도 배부른 푸념이라는 걸 유미는 안다.
그래도 야, 오유미, 너 많이 달려왔다.
가난과 외로움과 모욕의 갱도 속에 자칫 삶이 무너져 내릴 뻔하지 않았는가.
매몰된 삶에서 한 줄기 빛을 따라 지상으로 나와 이제는 산뜻하게 비상할 날을 꿈꿀 수도 있다.
유미는 오늘 자동차 대신 지하철을 타기로 했다.
유미는 오늘 자동차 대신 지하철을 타기로 했다.
폭설이 내린 날이라 그런지 출근 시간의 지하철 안은 만원이었다.
낯모르는 사람들의 낯선 체취와 막무가내의 부대낌. 정말 오랜만에 겪는 일이다.
예전엔 지하 인생에서만이라도 벗어나자 다짐했었지.
지하 월세방, 지하철 인생, 그리고 지하주점….
지하를 벗어나고 싶은 유미의 욕망은 언제나 하늘 가까운 곳을 선호하게 했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도 24층이다.
그래, 오유미. 많이 올라왔어.
유미는 옛 생각을 하며 너그럽게 지하철 안의 혼잡을 참아 내고 있었다.
어쩌면 초고층주상복합형 건물을 잘 짓기로 소문난 YB그룹 장래 오너의
어쩌면 초고층주상복합형 건물을 잘 짓기로 소문난 YB그룹 장래 오너의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 모르지.
잠깐 윤 이사를 떠올리고 있는데 기분 나쁜 느낌이 느껴졌다.
누군가가 지하철이 움직이는 리듬에 맞춰 유미에게 몸을 비벼 왔다.
빈틈없이 쟁여져 서 있는 승객들의 몸은 무심했지만 분명 엉덩이께에
뜨거운 열기를 느낄 수는 있었다.
아니, 아직도 이런 치한들이…?
유미는 잠시 난감했다.
지하철 안의 유리문에는 가면처럼 무표정한 남자들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였다.
미세하지만 집요하고 리드미컬한 남자의 몸이 조금씩 밀착해 들어왔다.
유미는 몸을 움직였다.
잠시 주춤하는 것 같았지만 이번에는 달아나는 유미에게 안달이 났는지
손으로 엉덩이를 더듬었다.
‘이런 쥐새끼 같은!’
유미는 화가 치미는 걸 억지로 참는다.
남자는 유미의 엉덩이를 손으로 쓸며 본격적으로 아랫도리를 슬슬 비비기 시작했다.
‘이런 쥐새끼 같은!’
유미는 화가 치미는 걸 억지로 참는다.
남자는 유미의 엉덩이를 손으로 쓸며 본격적으로 아랫도리를 슬슬 비비기 시작했다.
뒤를 돌아보니 모두 시침을 뚝 떼고 있다.
유미는 소리 없이 조심스레 손을 뒤로 뻗었다.
자신의 엉덩이 쪽으로 손을 옮긴 유미가 그 짓에 정신이 팔린 치한의 손을 꼭 쥐었다.
재빨리 깍지까지 끼고 힘을 주었다. 누군가 뒤에서 헉! 하고 된 숨을 내쉬었다.
그가 놀라 몸을 비틀 때 유미는 재빨리 그의 바지춤을 다른 손으로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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