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유혹

(104) 타인의 취향-12

오늘의 쉼터 2015. 3. 1. 11:59
(104) 타인의 취향-12
 
 

 

 
“여보세요?”

상대는 말이 없다.

“여보세요…?”

“…….”

상대는 여전히 말이 없다.
 
그러다 흠흠, 목소리를 가다듬는 소리가 났다. 남자다.

“누구세요? 말씀하세요. 안 그럼 전화 끊겠어요.”

유미가 전화를 끊으려 하자 상대가 드디어 다급한 소리를 냈다.

“아, 저기….”

“네….”

“나다.”

“누구…세요?”

“내 목소리도 잊었니? 아빠다.”

“아빠…?”

잠시 유미는 김 교수를 떠올렸다.
 
요즘 아빠라 부르는 남자는 김 교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와는 다르다.
 
그러다 가슴이 쿵, 떨어졌다.
 
유미는 얼결에 전화를 끊었다.
 
전화는 다시 울렸다.
 
유미는 어쩔까 하다가 전화 코드를 뽑아 버렸다.
 
그러자 휴대폰이 울렸다.
 
받지 않으려 했는데 윤동진의 이름이 떴다.

“왜 그렇게 전화를 한참 있다 받아요?”

“아, 네… 도착했어요?”

“아니 가고 있는 중이에요.
 
날씨가 참 좋아요.
 
몸과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워. 일도 다 그만두고 여행이나 떠났으면 좋겠다.”

“…그러게요.”

좀 전의 전화 때문에 심란한 유미가 건성으로 대답했다.

“대답이 심드렁한데?”

“그럴 리가. 참, 뭘 두고 갔어요.”

“뭘?”

“수갑.”

“응, 그거. 당신은 나한테 잡힌 거야. 이제 ‘꼼짝마’야. 몰랐어?”

“어머, 그런 거였어? 난 또 언제든 당신을 체포하라고 놔두고 간 줄 알았지.”

“하하, 그래. 날 체포하고 싶을 땐 언제든 그 수갑으로 날 체포해요.
 
우리 한 짝씩 차고 다닐까? 그리고 또 다른 걸 두고 갔을 텐데….”
 
“뭐요? 뭐 서랍 속에 화대라도 두고 갔나?”

“뭐야. 썰렁하다. 유미씨 눈에는 그게 안 보이나 보다.”

“뭘 두고 갔는데? 수갑 말고는 없던데.”

“내 마음. 내 하트.”

“더 썰렁해요.”

“벌써 또 보고 싶다. 아, 중요한 전화가 오네. 나중에 또 전화할게요.”

윤동진과 통화를 끝내고나자 눈앞에 아까 그가 두고 간 수갑이 보였다.
 
8자 모양의 수갑을 보고 잠시 자신의 ‘팔자’를 생각하다 그 남자의 전화를 받았다.
 
그 남자. 자신더러 늘 아빠라고 부르라고 강요하던 남자.
 
의붓아빠 조두식. 한때 엄마의 기둥서방 노릇을 했지만, 법적인 남편도 아니었던 남자.
 
엄마는 평생 결혼을 한 적이 없다.
 
유미의 생각으로는, 유미를 낳은 후 엄마는 어떤 남자도 사랑하지 않았다.
 
특히나 조두식 같은 남자는. 다만 엄마는 조두식을 두려워했다.

조두식이야말로 늘 엄마 곁을 맴도는 하이에나 같은 인간이었다.
 
엄마가 죽은 후에는 대상이 유미로 바뀌었다.
 
어렸을 때부터 유미는 그가 이상하게 싫었다.
 
그에게서는 왠지 범죄의 냄새가 났다.
 
유미가 손에 들고 있는 8자 수갑이 꽈배기처럼 흔들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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