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유혹

(109) 껌같은 사랑-3

오늘의 쉼터 2015. 3. 1. 12:08
(109) 껌같은 사랑-3
 

 

 
 
“자기 오늘 기사 노릇하면 가게 일은 어쩌고…. 나 일할 동안 계속 기다려야 하잖아.”

“괜찮아. ‘베네치아’에 사공이 몇인데. 그리고 너 원래 내 꿈이 뭐였는지 아냐?
 
돈 많은 과부 여재벌의 기사였어.
 
 기다리는 동안 책도 보고 음악도 듣고 졸다가 자판기 커피도 뽑아 먹고….
 
뭐 야간 봉사도 하고. 하하.”

“여재벌이 아니라 미안하네.”

“돈? 필요 없어. 말만 잘하면 이따 어깨 마사지도 해 줄게.
 
오늘 같은 날은 자글자글 끓는 온돌방에서 온천목욕이나 하면 딱인데.”

“그래, 이따 마사지해 줘. 내가 돈 안 받을게.”

“아니, 마사지 받으면서 돈도 받으려고?
 
암튼 오늘은 끝까지 나랑 있는 거야. 그럼 이 오빠 간다.”

인규의 말대로 인규는 예나 지금이나 유미가 힘들 때면 늘 곁에 있는 남자다.
 
그게 묘하다.
 
인규에게 고맙지만, 사랑의 감정은 그런 안정감과 감사의 마음과는 다른 것이다.
 
그게 왠지 유효기간이 약간 지난 우유를 마시는 그런 기분이다.

하루 종일 인규의 차를 타고 일정을 소화했다.
 
인규의 차는 폭설에도 끄떡없다.
 
유미는 눈발이 벚꽃 잎처럼 휘날리며 부딪치는 차창을 보며 이 남자야말로
 
일생동안 끄떡없이 내게 붙어 있을 남자일까, 생각했다.
 
어쩌면 이 남자와 평생 헤어질 수 없을지도 몰라.
 
사랑 때문이 아니라 함께 공유할 수밖에 없는 비밀 때문에….
 
가슴이 조금 답답했다.
 
그때 인규의 핸드폰이 울렸다.

“눈 때문에 전화를 못 받겠다.
 
대신 받아. 운전 중이라고 이따가 연락하겠다고 해.”

그러나 인규의 액정에 ‘마나님’이라고 떴다.

“지완인데?”

“그럼 그냥 둬. 받지 마.”

핸드폰이 끊겼다.
 
그런데 이번에는 곧바로 유미의 핸드폰이 울렸다.
 
유미가 입술에 검지손가락을 갖다 대며 말했다.

“쉬잇! 지완이야. 받아 볼게.”

인규가 카오디오를 껐다.
 
유미가 휴대폰 폴더를 열었다.

“여보세요?”

“나야, 지완이. 전화 괜찮니?”

“응. 잠깐은. 무슨 일?”

“눈 오는 날은 휴대폰 안 터지니?”

“무슨 소리야. 터졌잖아.”

“남자들 휴대폰 말이야. 둘 다 불통이야. 남편도 그렇고 애인도 그렇고….”

유미가 인규의 눈치를 살폈다.

“참, 유미야. 미술관 일이 그렇게 바쁘니?
 
웬 야근을 연장으로 시키니?
 
요즘 짝퉁 욘사마 얼굴 보기 너무 힘들다.
 
너 그 사람, 너무 부려 먹지 마.”

“야근?”

야근이라니? 아직은 야근할 정도로 바쁜 일은 없는데….
 
박용준이 지완에게 거짓말을 한 게 분명하다.
 
눈 맞은 강아지처럼 천방지축인 박용준.
 
요즘 대학을 갓 졸업한 송민정에게 관심 있는 거 같던데.
 
낙하산 인사로 내려온 송민정은 계열사 사장의 딸이라는데,
 
재색을 겸비한 묘령의 아가씨다.
 
한 달 월급이 그녀에겐 구두 한 켤레 정도나 될까.
 
과부나 유부녀에게 빌붙어 살던 용준에게는 돼지발에 편자일 텐데,
 
언감생심 껄떡대는 눈치였다.
 
“으음…. 약간 그럴 일이 좀 있었어.
 
국제적인 업무를 하다 보니 시차 때문에….”

일단 용준을 두둔해 주는 게 도리다.

“근데, 유미야. 조만간 나랑 좀 만나자. 나 좀 물어볼 게 있어.”

“나한테?”

“너 전문가잖아.”

“….”

바람피우는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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