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유혹

(105) 타인의 취향-13

오늘의 쉼터 2015. 3. 1. 12:00
(105) 타인의 취향-13
 
 

 

 
그 조두식이 왜 전화했을까.
 
한동안 종적을 알 수 없어서 내심 안심하고 있었는데….
 
이모의 말마따나 돈 냄새를 맡은 걸까?
 
이모로부터 죽은 엄마의 지분과 땅문서를 받은 걸 알아챈 걸까?
 
어디서 하이에나처럼 또 나타난 걸까?
 
상대하고 싶지 않은, 유미의 인생에서 지우고 싶은 인간 중의 하나다.

요즘 유미의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상한 일들이 그와 관련되어 있는 건 아닐까?
 
아까 얼결에 전화를 끊은 게 약간 후회가 되었다.
 
그에게 속 시원히 따져 물어볼 걸. 그러나 그는 원체 음흉한 인간이니
 
그걸 털어놓을 리가 없을 것이다.
 
뭔가 필요한 게 있으면 그쪽에서 또 전화할 것이다.
 
다만 지금으로서는 유미가 그를 만나고 싶은, 또는 만날 이유는 전혀 없는 것이다.

“어우, 재수 없어. 왕짱나!”

이 뷰리풀 선데이에 아침부터 웬 날벼락?
 
유미는 수갑을 노려보다가 장난삼아 안경처럼 눈에 걸쳤다.
 
그러다 브래지어처럼 젖가슴에 걸쳤다.
 
동그라미 안에 꼭 낀 젖가슴이 우스워 유미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쫄 필요 없다.
 
나는 이제 조두식을 두려워하던 어린 유미가 아니야.
 
이 수갑으로 조두식을 가둘 수도 있고,
 
윤동진을 내가 원하는 데로 끌고 갈 수도 있을 거야.

조두식은 음흉한 의붓아버지의 전형이었다.
 
유미가 수민과 저질렀던 철없는 불장난 때문에 엄마가 이모네 식당을 나왔을 때도
 
어디선가 조두식이 또 나타났다.
 
방 두 칸짜리 낡은 적산가옥에 세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
 
조두식은 태생이 부산은 아니지만,
 
부산의 깡패들과 예전부터 밀접한 관계였다.
 
들리는 말로는 조폭의 깍두기라고도 했고,
 
어떤 조직의 중간 보스로 밀수와 관련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의 외형적인 직업은 외항선원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집을 자주 비웠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러나 그가 가끔씩 집에 머물 때면 유미는 불안하고 우울한 기분을 떨쳐낼 수 없었다.

언제부턴가 성숙한 유미의 몸을 눈으로 훑으며 그는 입맛을 다시고는 했다.
 
생선을 앞에 둔 고양이의 날카로운 눈빛으로,
 
때로는 죽은 먹이를 앞에 둔 하이에나가 비열하게 코를 킁킁대듯
 
그는 유미의 주위를 서성댔다.
 
어쩌다 설거지를 할 때면 소리 없이 나타나 뒤에서 유미의 엉덩이를 쓸거나
 
두 손으로 가슴을 슬쩍 쥐고는 사라졌다.
 
책상에서 공부하는 유미의 뒤에 와서 코를 킁킁대며 귓불의 냄새를 맡기도 했다.

“으음…. 너한테는 좋은 냄새가 난다,
 
아냐? 사향 냄새 같기도 하고. 남자들이 벌떼처럼 꼬일 거야.”

그럴 때마다 유미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어쩌면 온갖 고생을 하며 유미를 키워준 엄마를 떠나 서울로 유학을 결심한 것도
 
조두식 때문일 것이다.
 
엄마도 그걸 알기 때문에 유미를 놓아 주었을 것이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그가 어느 날 밤, 유미를 덮쳤다.
 
완강한 힘에 눌려 숨도 쉬지 못했던 열여덟 살 소녀는 공포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때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짐승 같은 놈에게 순결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밖에는 없었다.
 
그건 엄마의 신조이기도 했다.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
 
게다가 엄마의 남자에게 당하는 게 어린 그녀의 생각으로도 기가 막혔다.
 
그런 남자에게 처녀를 잃은 걸 알면 엄마는 자살할 위인이다.
 
그가 흥분하여 숨을 씩씩거리는 게 돼지 같았다.
 
그가 성난 아랫도리를 밀고 들어오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사람이지만 이런 돼지와 빌붙어서 뒹굴고 있으면 나도 암퇘지다.
 
아 그리고 이런 돼지우리에서도 벗어나고 싶어.
 
어린 유미에게 그의 말뚝이 박히기 전에 가슴에 먼저 그 각성이 말뚝처럼 박혔다.
 
그때 갑자기 그가 돼지 멱따는 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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