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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타인의 취향-9

오늘의 쉼터 2015. 3. 1. 11:39
(101) 타인의 취향-9 
 
 
 

 


그가 유미에게 가방에서 맨 나중에 꺼낸 것을 던졌다.
 
검은 가죽으로 된 올인원이었다.
 
구두끈처럼 터진 앞을 가죽 끈으로 졸라매게 되어 있는, 포르노에서나 봄직한 속옷이었다.

 

“그 흰 레이스 속옷 대신 이걸 입어요.”

 

유미는 윤 이사의 요구대로 그 옷을 입었다.
 
윤 이사가 찬사를 보냈다.

 

“정말 잘 어울려요.”

 

그가 채찍을 손에 들고 다가왔다.
 
유미가 찔끔 놀라서 두 손으로 몸을 가리며 물러섰다.

 

“오, 놀라지 말아요.”

 

그가 이번에는 금속체인을 손에 들고는 말했다.

 

“나를 침대에 묶어요.
 
끝에 잠금장치가 있죠?
 
별로 어렵지 않을 거예요.”

 

아니 이게 뭐 하자는 건가.
 
그러니까…그는 이런 준비, 아니 장비가 있어야 하는 남자였나!?

 

“저기, 저….”

 

“쉬잇! 내가 그걸 원해요.”

 

유미는 아까 오늘밤만은 그가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는 약속을 떠올렸다.
 
어쩔 수 없이 그가 시키는 대로 했다.

 

“채찍을 들어요.
 
그리고 날 때려요.
 
하기 힘들면 가방 안에 눈가리개가 있어요.
 
정말 오랜만에 절정을 느끼고 싶어요.”

 

윤 이사가 말했다.
 
거의 애원에 가까웠다.
 
유미는 그렇게 느꼈다.

 

“유미씨라면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왠지 유미씨라면….”

 

“이건, 내 취향과는 달라요.”

 

“알아요. 난 어릴 때부터 늘 누군가와 경쟁하고 이기고 지배하도록 키워졌어요.
 
그 강박관념으로부터 늘 자유롭고 싶어요.
 
언제부턴가 내 성적인 취향이 달라졌어요.
 
하지만 난 알아요.
 
유미씨가 어떤 여자인지….”

 

그는 많은 의미를 담은 눈빛을 유미에게 보냈다.

 

“노력해 보겠어요.”

 

세상은 요지경 속이다.
 
태생이 재벌이고 부러울 게 없는 남자가 노예처럼 다뤄지길 원한다.
 
한때는 이런 남자들의 노리개가 된 적도 있었다.
 
굴욕을 참으며 이런 남자들을 정말로 지배해 보고 싶은 열망으로 들끓었던 적도 있었다.
 
배가 부른 자의 어리광인가.
 
유미는 그동안 알던 윤 이사의 겉과 속이 이렇게 다른 것에 적잖이 놀라고 실망스러웠다.
 
아아, 사랑이 저만치 가네…
 
하지만 그가 가엾기도 하다.
 
인간은 누구나 타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불행하다…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다.
 
어쨌든 이건 그의 생일 선물이니까.

 

유미는 눈가리개를 했다.
 
그리고 채찍을 휘둘렀다.
 
그럴 때마다 윤 이사가 꿈틀대며 신음을 흘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갑자기 유미의 몸으로도 이상한 흥분이 밀려왔다.
 
유미는 아예 눈가리개를 벗어젖혔다.
 
체인에 묶여 침대에 누워있는 남자는 포획된 짐승처럼, 생포된 노예처럼 보였다.
 
그의 가슴팍과 복부가 희미한 채찍 자국과 땀으로 번들거렸다.
 
다만 유미를 보는 그의 눈에서 환희의 빛이 새어나오는 게 달랐을 뿐이다.
 
이번에는 유미가 눈가리개를 그의 눈에 씌웠다.
 
그리고 그의 머리칼을 움켜쥐고 산소를 갈구하는 물고기 같은 그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갑자기 유미의 뇌리 속으로 이것과 비슷한 장면이 지나갔다.
 
사라진 비디오테이프에 담겨있던 영상 중의 하나…
 
그 비디오에서 남자는 여자를 묶어놓고 여자의 얼굴 위에 침 대신 분출하는 정액을 뿌려댔다.
 
그 덕분에 정액 팩을 자주 할 수 있었지만…
 
그러나저러나 그 비디오테이프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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