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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타인의 취향-10

오늘의 쉼터 2015. 3. 1. 11:46

(102) 타인의 취향-10 
 


 

 

윤 이사를 거의 성고문하다시피 한 섹스가 끝났다.

 

그는 더할 나위 없이 만족해서 잠들었다.

 

마지막 절정 때는 거의 울음을 터트릴 것처럼 보였다.

 

섹스가 끝나자 그는 유미의 품에 안겨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당신 덕분에 천국의 끝까지 갔다 왔어. 정말 최고의 선물이었어. 고마워요.”

유미는 그의 잠든 얼굴을 내려다보면서 착잡한 심경이 되었다.

 

왠지 그가 이해가 될 듯도 싶지만, 그가 낯설게 느껴졌다.

 

잠깐 그와 무대 위에서 연극을 하고 내려온 거 같다.

 

아까 그렇게 흥분되었던 것은 예전에 무명배우로 에로비디오를 찍던 기억이 나면서

 

그만 감정이 몰입되었던 탓이다.

 

그런 시절이 있었지. 생각하고 싶지 않은 봉인된 과거의 어느 기억이 그만 그 상황에서

 

튀어나왔던 것이다.

 

유미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방안에 펼쳐진 그의 위험한 ‘장난감’들을 내려다보았다.

 

연극이 끝난 후의 소도구들 같았다.

 

그걸 주섬주섬 그의 가방에 주워 담았다.

 

그리고 연고를 찾아 그의 벗은 몸에 몇 군데 붉게 채찍 자국이 난 곳에 발라 주었다.

그가 눈을 떴다.

“난 이렇게 마음 따스한 잔혹녀는 처음이야. 당신을 놓치고 싶지 않아.”

“당신, 늘 이래요?”

“왜? 겁나요? 당신도 별로 싫어하는 거 같지 않던데….”

“타인의 취향에 간섭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날 타인으로 생각해요?”

“그럼 한 번 잤다고 반드시 남이 님이 되라는 법이 있나요?”

“난 남 같지 않은데…. 난 여자들 앞에서 대충 그저 그런 섹스 연기를 하는 게 싫어요.

 

그래서 여자들을 멀리하고 차라리 스포츠에 빠져 버린 거지.

 

암말을 더 사랑하기로 했으니까….

 

이혼한 아내를 비롯하여 어쩌다 만난 여자들은 내 취향을, 아니 날 이해하지 못했어요.”

 

“아까 무슨 소리예요? ‘난 알아요, 유미씨가 어떤 여자인지를’이라고 한 말?”

“적어도 유미씨는 그런 여자들과는 다르리란 확신이 있었어요.

 

경직되지 않고 스펀지처럼 모든 걸 흡수하고 그저 물처럼 따스하게 나를 감쌀 거 같은 느낌이.

 

유미씨, 취향을 바꿔 봐요.”

“이사님이야말로 취향을 바꿔 봐요.”

“물론 그것도 유미씨와 노력해 보고 싶어요.

 

다만 오늘만은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 주고 이해받고 싶었어요.”

유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유미를 끌어다 안았다.

“이렇게 안고 우리 아침까지 자요.

 

지진이 나도 부도가 나도 당신 품에서 안 나갈 거야.”

윤 이사의 팔베개를 베고 누운 유미는 이 남자가 내가 어떤 여자라는 걸 알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미에 대한 음해 자료를 그는 무시했다고 말했다.

 

게다가 내가 이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이라니, 유미야.

 

유미는 속으로 웃었다.

 

하지만 끌린다.

 

독특하고 묘한 구석이 있다.

 

무언가 까다롭고 복잡한 남자.

 

스라소니란 별명을 갖고 있는, 사업에 있어서는 냉혹한 승부사인 이 남자.

 

그러나 한없이 연약하고 상처받기 쉬운 어린애 같은 남자….

유미를 스쳐 간 많은 남자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사랑이든 섹스든 욕망이든 타협이든 그들은 어떤 식으로든 유미와 관계를 맺고 스쳐 갔다.

 

남자들이 먹고 싶어 하는 몸을 가진 죄로 거대한 먹이사슬로 빠지게 되었지.

 

그러나 지금은 내 욕망은 무엇인가.

 

어디까지 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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