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유혹

(93) 타인의 취향-1

오늘의 쉼터 2015. 3. 1. 00:46

(93) 타인의 취향-1   

 

 

 

 

 

김 교수의 제안을 받아들여 유미는 교수 공채에 서류를 냈다.
 
그리고 윤조미술관의 재개관 프로젝트 준비를 위한 인사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첫 출근을 하게 되었다.
 
물론 유미의 처지와 상황을 고려해서 일단 주 3일만 근무하기로 했다.
 
곧 새 학기가 다가올 테고,
 
그게 아니라도 유미는 재충전과 휴식이 일 자체로 연결되는 사람이다.
 
쉬는 날엔 특강과 라디오 방송원고 집필, 블로그 관리, 남자 관리… 등등 할 일이 많다.
 
아무리 멀티 태스킹에 유능하다고 하더라도 노상 부팅이 돼 있을 수는 없다.

하지만 기획과 실무의 실질적 책임자는 유미였으므로 유미는 윤조미술관의 브레인으로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인공호흡기를 다는 한이 있더라도 브레인이 멈추는 뇌사는 막아야 할 처지다.
 
대신에 용준이 주말을 뺀 주 5일을 미술관에 상근하며,
 
유미에게 보고하고 지시대로 일을 처리하는 시스템으로 가기로 했다.
 
유미는 수석 큐레이터이고, 유미의 상관은 본사의 최 부장이란 사람이지만
 
형식적인 결재 상사일 뿐이었다.
 
갓 미술대학원 예술경영학과를 졸업한 여자 큐레이터 한 명과 그 밑에 알바생 하나를 두었다.

출장에서 돌아온 윤 이사가 시무식 삼아 직원들에게 저녁을 샀다.
 
그가 얼마나 윤조미술관에 애정을 갖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식사 자리에서 용준은 윤 이사를 어디서 많이 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정한 얼굴과 잘 빠진 몸매, 고급 슈트 모델처럼 기품 있는 남자.
 
게다가 돈까지 있는 재벌 2세.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범사원처럼 새 양복을 입은 용준이 자기소개를 하자 윤 이사가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식사가 끝나고 모두 헤어질 때,
 
윤 이사가 유미에게 살짝 소곤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기사를 보냈는데 혹시 우리 집까지 태워주면 안 돼요?”

내심 유미와 미술관 문제에 대한 의논을 핑계 삼아
 
차라도 한 잔 마시려던 용준은 적이 실망했다.
 
유미가 대답 없이 생글거렸다.
 
아니나 다를까?

“용준씨는 그럼 내일 미술관에서 보는 걸로 하죠.
 
다들 조심해서 귀가하세요.”

용준은 쩌업, 입맛을 다시며 그 자리를 물러났다.
 
잠시 후 두 사람이 유미의 차로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가로등 불빛에 두 사람의 얼굴이 흐릿했지만 묘하게 설레는 시선을 주고받는 것이
 
용준의 동물적인 감각에 포착되었다.
 
아! 그러고 보니 그 남자는 새해에 유미와 잤던 호텔에서 보았던 남자다.
 
그때도 빠다 냄새를 질질 풍기더니….
 
용준은 윤 이사를 태운 유미의 차가 떠나는 걸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윤 이사를 태운 유미는 차를 출발시키며 물었다.

“집이 어딘데요?”

“성북동입니다.”

“혹시 집에 가면 기사에게 커피라도 한 잔 주나요? 차비는 안 받을 게요.”

“엄한 아버지와 함께 삽니다.
 
결혼을 해야 분가를 시켜주겠다고 하십니다.
 
귀가 시간까지도 체크 하시는 통에….”

“유행어 바꿔야겠네요.
 
엄한 아버지의 아들이라…
 
그게 바로 엄친아네요.
 
회장님께 저도 같이 가서 인사드릴까요?”

“관둬요. 아버지랑 라이벌 될 일 있어요?
 
안 그래도 요즘 히스테리가 만만치 않은데….”

“외로운 부자(父子)를 다 즐겁게 해드릴 수도 있는데… 앗, 죄송!”

유미가 윤 이사의 눈치를 살피더니 입을 다물었다.

“대신 유미씨 집에 가서 차 한 잔 하는 건 괜찮을 거 같긴 한데….”
 

'소설방 > 유혹' 카테고리의 다른 글

(95) 타인의 취향-3   (0) 2015.03.01
(94) 타인의 취향-2   (0) 2015.03.01
(92) 개와 고양이의 진실-16   (0) 2015.02.25
(91) 개와 고양이의 진실-15   (0) 2015.02.25
(90) 개와 고양이의 진실-14   (0) 2015.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