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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개와 고양이의 진실-14

오늘의 쉼터 2015. 2. 25. 17:43

(90) 개와 고양이의 진실-14  

 

 

 

 

 

“그래도 돼요? 사실 저 오늘 혼자 집에 들어가 자고 싶지 않았어요.
 
혼자 있는 게 너무 무서웠거든요.”

“그래? 그럼 오늘 밤 이 아빠가 재워줄게.”

“그런데 아빠가 더 무서워…ㅋㅋ”

유미가 술이 취하는지 킥킥, 웃었다.

“난 아들놈이 삼형제라서 정말 딸을 하나 길러보고 싶었지.”

“전요, 아빠가 없어요. 아빠가 누군지 몰라요. 그런데 제가 아빠라 불러도 돼요?”

갑자기 유미는 아빠라고 불러보고 싶었다.

“아빠. 아빠? 저 좀 취했나 봐요.”

“오빠라 부르는 거보다는 못하지만. 요즘 젊은 여자들은 애인보고 모두 오빠,
 
오빠, 이렇게 부르더구먼.
 
한데 예전엔 젊은 여자들이 제 남편을 부를 때 아빠라고 부르기도 했지.
 
남들이 보면 죄 오빠랑 아빠랑 근친상간을 하는 거 같으니,
 
원. 오 선생이 아니 이제부터 유미라고 불러도 되겠나?
 
암튼 유미가 아빠라 그러니까 내가 꼭 남편이 된 거 같은 기분인데, 허허.”

“내겐 아빠라는 남자가 없어요.
 
내게는 그냥 수컷이 있을 뿐이었어요.
 
그래서 어쩌면 세상 모든 남자들이 아빠였으면 하고 기대고 싶은 속마음이 있는지 몰라요.”

유미의 혀가 서서히 꼬부라지기 시작했다.
 
포도주 한 병을 거의 혼자 다 마셔대더니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졸기 시작했다.
 
김 교수는 유미의 머리를 자신의 어깨에 기대게 해주었다.
 
향수냄새인지 샴푸냄새인지 좋은 냄새가 코로 들어왔다.

“울 아빠가 날 지켜주지 못해서 난 힘들게 살았어요.
 
이 세상에 아빠 없는 여자는 여자 예수야.
 
나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몰라요.”

김 교수는 유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었다.
 
“난 그래도 살아야 했어요.
 
세상 모든 남자는 날 지켜줄 아빠가 아니니까,
 
난 남자들을 혼자 정복해야 했어요.
 
그래서 세상에 우뚝! 서고 싶었어요.
 
그게 나의 아름다운 죄야.
 
아니 어쩌면 정당방위인지도 몰라요.”

유미가 우뚝! 하고 말하자,
 
갑자기 김 교수도 오랜만에 우뚝 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 낮에 유미에게 전화할 때 가슴이 몹시 설레고 뛰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욕망이었다.
 
마누라 가고 난 지 오년째, 여자를 안아본 지도 몇 년이 지났다.
 
그는 부엌으로 가서 싱크대 서랍에 준비해둔 푸른 알약 하나를 꺼내 먹었다.
 
처음으로 의사에게 처방받은 알약의 약효를 조심스레 기대했다.
 
아마 약효는 한 시간 정도면 나타날 것이다.
 
어쩌면 효과가 없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유미는 잠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무언가를 말했다.

“다 죽여버릴 거야.”

유미는 왠지 오랜만에 늪 같은 취기로 빠지는 자신을 느꼈다.
 
얼마나 이렇게 자신의 모든 걸 놓고 취하고 싶었던가.
 
어느 때는 취기는 남자를 유혹하는 데 좋은 무기가 되었다.
 
하지만 술도 마음껏 마시지 못하고 긴장하는 건 얼마나 슬픈 습관이었던가.
 
유미가 얼마나 주량이 센지, 술주정이 어떤지 알 수 없는 김 교수는
 
자신을 편히 여기고 취한 유미가 한편으로는 애틋하고 어여뻤다.
 
‘다 죽여버릴 거야’를 연발하는 유미의 작은 입술을 바라보던 김 교수가
 
유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만히 포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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