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유혹

(80) 개와 고양이의 진실-4

오늘의 쉼터 2015. 2. 25. 17:13

(80) 개와 고양이의 진실-4  

 

 

 

 

유미의 어처구니없는 립서비스에 김 교수의 얼굴이 아이처럼 환해졌다.
 
아아, 정염은 늙지도 않는다.

“아, 뭐 그렇게까지야….”

“정말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세요.”

“고맙네. 그럼 언제 이 젊은 오빠랑 술이나 한잔 하세.”

김 교수가 웃으며 말했다.
 
주름진 얼굴 너머로 순진한 소년의 밑그림이 언뜻 보였다.

“아니,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오늘 당장은 어떤가?”

“당장요?”

“그래요.”

“지금도 좀 취하셨잖아요.”

“이 정도는 괜찮아. 거 왜 불어로 앞에 먹는 술, 뭐라 그러지? 아페….”

“아페리티프요.”

“그래, 그건 마셨으니 이제 제대로 마셔보자고.”

김 교수는 벌써 옷을 챙겨 입었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윤 이사였다.
 
유미는 망설이다 전화를 받았다.

“지금 어디예요?”

대학에 일이 있어 잠깐 들렀어요.”

“잠깐 봅시다.”

“지금요…?”

유미는 속으로 잘됐다 싶었다.
 
오늘따라 우울한 김 교수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술을 마시는 일이 썩 내키지 않았다.

“내일 유럽으로 갑자기 출장 가게 됐어요.”

유미는 김 교수를 힐끗 쳐다보고 일부러 더 큰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오늘밖에 시간이 안 된다고요? 어쩌나. 당장 결정해야 한다고요?”

김 교수가 적이 실망한 얼굴로 알아서 하라는 제스처를 썼다.

“갑자기 그렇게 급히 전화하시면 어떡해요. 알겠어요. 좀 있다 봐요.”

김 교수가 다시 외투를 벗고 의자에 앉았다.
 
“가보세요. 내가 괜히 바쁜 사람을 붙들고 고집을 피운 거 같네.”

“아이, 저도 아쉽네요.
 
제가 뭐 물건을 봐 둔 게 있는데 하필 오늘 결정을 해야….”

유미가 김 교수의 눈치를 보았다.

“대신에 다음번엔 교수님이 원하시면 언제든 달려올게요.”

김 교수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래요. 다음엔 저녁식사도 하고 술도 합시다.”

“예….”

유미는 일단 대답을 하고 교수의 연구실을 물러나온다.
 
노후된 타이어로 갈고 싶진 않다.
 
그러기 위해서는 펑크를 내지 않아야 한다.

윤 이사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아직 근무시간이라 회사 차로 갈 겁니다. 학교 주차장에 그대로 계세요. 곧 갑니다.”

“퇴근 후 저녁에 만나면 안 되나요?”

“시간이 그렇게 되지 않아서요. 그런데 뭘 결정한다고요?”

“아아, 그건….”

김 교수를 따돌리기 위해 급히 쳤던 애드리브였다.
 
아닌 게 아니라 오늘 밤이라도 윤 이사의 ‘물건’을 보고
 
당장 가부 간의 결정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그 정도의 구매력과 결정권을 가질 수 있다면.

그때 검은색 세단이 서서히 미끄러져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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