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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개와 고양이의 진실-3

오늘의 쉼터 2015. 2. 15. 14:40

(79) 개와 고양이의 진실-3  

 

 

 

 

“꼬냑을 한잔 하고 있었어요. 오 선생도 한잔 하시죠.”

그가 유미의 대답도 듣기 전에 잔을 꺼내 술을 따르고 유미에게 건넸다.

“식후에는 꼬냑이 그만이죠.”

한 모금 입술에 대자 꼬냑 특유의 향이 입 안으로 물큰 들어왔다.
 
싫지 않았다.
 
김 교수는 자신의 잔에 꼬냑을 한 잔 더 따라 마셨다.
 
그러고 보니 그는 이미 여러 잔째 마시고 있었던 모양이다.

“새 학기에 일단 원서를 한번 내보도록 준비를 좀 하고 계세요.
 
일단 내가 오유미 선생을 밀고 있으니 날 믿으시고요.
 
참, 설날에 나랑 이사장님께 세배나 한번 갑시다.”

“예….”

봄에 재개관하는 윤조미술관의 책임을 맡았다는 이야기를 꺼내기에는 시기상조다.
 
양손에 떡을 쥘 수도 있겠군.
 
하지만 두 마리 토끼를 잡는 행운은 쉽게 오는 게 아니다.
 
게다가 단번에 교수 임용이 되는 일 따위는.

“그런데 오유미 선생은 박사학위는 없으시죠?”

“예. 석사까지만 했어요.”

“외국에서 하셨다고요?”

“예, 프랑스에서 했어요.”

“아, 얼마나 계셨죠?”

“한 삼년 있었습니다.”

“프랑스라…멋진 나라에 계셨군요.
 
꼬냑과 와인의 나라.
 
젊었을 때 나도 그곳으로 유학가고 싶어 했죠.”

김 교수가 눈을 감았다. 취기가 도는 걸까?
 
지나간 젊음을 반추하는 걸까?

창밖으로부터 겨울 오후의 햇살이 투명하게 들어 왔다.
 
적송 가지에 앉았던 까치가 날아가니 휘청거리던 가지에서 푸드득, 눈이 쏟아져 내렸다.
 
김 교수의 머리에 잔설처럼 내려앉은 흰머리에도 햇살이 눈부셨다.
 
고급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바흐의 곡이 섬세하게 공기에 스며들었다.
 
유미는 꼬냑을 다 비웠다.
 
꼬냑이 목구멍으로 넘어가 온몸으로 퍼지자 나른한 기분이 들었다.

“너무 빨라요. 모든 것이. 청춘도 젊음도…참 억울해요.”

김 교수가 눈을 떴다.
 
유미를 그윽하게 바라보았다.
 
유미도 그를 바라보았다.
 
아마 김 교수의 나이는 60대 초반쯤?
 
어쩌면 한 번도 얼굴을 보지 못한 아버지의 나이와 비슷할지 모른다.
 
유미는 이 나이 또래의 나이든 남자를 보면 상상 속의 아버지를 떠올려보곤 했다.
 
격이 높고, 지적이고, 성이 Y일지 모르는 아버지.
 
평생 어머니가 숨어 살아야 할 만큼 지체가 높았을지 모르는 아버지.
 
유미가 김 교수를 보며 아버지를 상상하고 있는데, 김 교수가 입을 열었다.

“악마에게 영혼을 판 파우스트가 이해가 됩니다.”

김 교수는 유미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악마에게 영혼을 팔고 젊어져 모든 환락을 누리고 싶다는 말인가?

“돈이고 지성이고 명예고 다 부질없어요.”

김 교수가 붉은 얼굴로 머리를 천천히 흔들었다.
 
이 어른이 오늘 생리를 하는 건 아닐 테고, 왜 이리 우울하신가?
 
유미는 짐짓 위로하듯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그걸 모두 얻은 자의 불평 아닐까요? 교수님은 욕심쟁이죠?”

“글쎄….”

“전 교수님 같은 멋진 아버지가 있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아버지…?”

김 교수가 실망한 얼굴로 물었다.

“내가 오 선생에겐 아버지처럼 보이나….”

아아, 참! 이분도 남자지.

 

몸은 송해라도 마음은 타이거 우즈일 거야.

 

유미는 농반진반으로 말을 바꿨다.

“아뇨, 오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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