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6> 27장 지도자 [8]
(568) 26장 지도자 <15>
“어떻게 말입니까?”
정색한 김동일이 묻자 서동수가 심호흡부터 했다.
‘그렇지, 내가 동성을 창립할 때의 이야기부터 하는 것이 낫겠다.
허심탄회하게 내가 리베이트 먹은 기법까지 다 털어놓자.’
1시 반에 끝날 예정이었던 점심이 3시까지 늦춰졌다.
둘이 식당에서 나온 것은 의자가 불편했기 때문이다.
주석실 옆쪽 소파가 있는 주석용 휴게실로 옮아간 둘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창업(創業)은 개국(開國)의 축소판과 같다.
그러나 창업자의 임기는 무한대다.
죽거나 치매에 걸리지 않는 한 대주주의 권리를 행사한다.
이윽고 동성의 사업 분야와 자산 규모까지 설명을 마쳤을 때 김동일이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가 장관께 사업을 맡기지요.”
“완벽하게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결연한 표정으로 대답한 서동수가 김동일을 보았다.
“사업으로도 조국과 인민을 위해 얼마든지 봉사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장관 덕분에 새 희망이 솟는 것 같습니다. 의욕이 일어납니다.”
김동일이 얼굴을 펴고 웃었다.
“정치를 마치면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이 말입니다.”
“그렇죠.”
갑자기 가슴이 멘 서동수가 숨을 들이켰다.
김동일이 돈이 부족해서 이러겠는가?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서 불안했을 것이었다.
그것을 상의할 상대가 등장한 셈이다.
아직 한낮이었지만 김동일이 술을 가져오라고 시키더니 서동수의 잔에 황금빛 코냑을 따라주었다.
“장관, 난 아직 배울 것이 많아요.”
김동일이 차분해진 얼굴로 서동수를 보았다.
“그동안 장관하고 자주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불편해서…….”
“언제든지 부르시지요, 바로 달려오겠습니다.”
“내가 고칠 것이 있습니까? 장관이 보시는 관점에서 기탄없이 말씀해주시지요.”
다시 서동수의 숨이 저절로 들이켜졌다.
믿는 상대에게는 김동일이 다 벗어던지고 다가오는 것이다.
이것은 주변 분위기가 그렇게 만들었다.
서동수는 기탄없이 말해주기로 마음먹었다.
설령 듣기가 거북하더라도 이런 자세라면 머릿속에 넣어둘 사람이다.
“TV 화면에 위원장께서 말씀하시는 장면만 나옵니다.
앞으로는 들으시는 장면을 늘리시지요.”
“아아.”
김동일이 머리를 끄덕였다.
“촬영기사 놈들이 아부꾼이어서 그렇습니다. 당장 지시하겠습니다.”
“옆에서 노인 장군들이 수첩을 들고 다니면서 모두 적는 모습이 보기에 좋지 않습니다.
분명히 위원장께서 시키신 것이 아닐 텐데요.”
“그것도 아부꾼들이 시작하니까 너도나도 따라서 한 것입니다. 당장 없애라고 하지요.”
“장군들이 모두 노인인데 그 사람들 앞에서 담배를 피우시는 것도 좀…….”
“아, 남조선은 모두 금연이지요? 그럴 만합니다. 까짓것, 카메라 앞에서는 참지요.”
“잘하셨습니다. 아니,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충신이라면 목숨을 걸고 직언을 해야만 한다.
젊은 지도자의 버릇을 잘못 들인 것이 측근이다.
그때 김동일이 서동수를 보았다.
“장관께 부탁이 있습니다.”
“예, 말씀하시지요.”
“우리 이렇게 둘이 있을 때는 형님, 동생 하고 그럽시다. 의형제를 맺자는 말씀입니다.”
서동수는 입안에 고인 침을 삼켰다. ‘대답하자.’
(569) 26장 지도자 <16>
“알았어, 동생.”
마침내 서동수가 대답했다.
그 순간 갑자기 눈이 화끈거렸으므로 서동수는 눈을 크게 떴다.
감동을 한 것이다.
“형님.”
김동일이 부르더니 손을 뻗어 탁자 위에 놓인 서동수의 손을 쥐었다.
따뜻한 손이다.
“우리 의리 변치 맙시다. 형님.”
“염려하지 마, 동생.”
“날 좀 많이 충고해 줘요.”
“걱정하지 마.”
서동수의 가슴이 부글부글 끓어 올랐다.
앞으로 김동일에 대해서 욕이라도 한마디 하는 놈이 있다면 주둥이에 똥을 집어넣으리라.
외면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되는 것이다.
숨을 들이켠 서동수가 한마디씩 분명하게 말했다.
“난 결코 신의를 배신하지 않을 거야. 동생을 위해서 내 모든 것을 던질 수도 있어.”
결연한 표정으로 말한 서동수의 눈에서 마침내 한 방울쯤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것을 본 김동일의 눈에도 금방 눈물이 고였다.
“힘들어요. 형님.”
“알아, 고생이 많을 거야.”
한국에서 듣고 보는 김동일의 시행착오가 어디 악의에 의한 것인가?
선입견만 버리면 얼마든지 따뜻한 시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손등으로 눈을 닦은 김동일이 불쑥 말했다.
“요즘 일본이 우리한테 자꾸 밀사를 보냅니다. 미국이 배후에 있는 것 같고요.”
정색한 김동일이 말을 이었다.
“경제협력단을 보낸다고 해요.
대신 납북자 확인을 해달라고, 핵 문제는 그 후에 언급하겠다는데 우리한테는 좋은 조건이죠.”
그것은 서동수도 아는 사실이다.
한국 언론에서 매일 보도되는 터라 바쁜 시장 아줌마들도 다 안다.
아베 총리는 역사교과서를 완전히 수정했다.
위안부에 대한 사과는커녕 위안부 자체를 부인했으며,
혐한 분위기를 조성해 한국에 대한 반감을 증폭시킴으로써 과거사 문제를 상쇄시켰다.
따라서 우익 분위기에 휩쓸린 일본 여론은 압도적으로 아베를 지지했지만 한·일 관계는 역대 최악이다. 그 사이에 일본은 북한과의 우호 협력 관계를 굳히려는 것이다.
남북한 이간 전술이다.
서동수가 입을 열었다.
“동생이 일본 정부에 대마도 반환을 요구하면 아마 한국의 영웅이 될 것이네.”
“예? 대마도요?”
김동일이 눈을 가늘게 떴다.
“부산 밑에 있는 섬 말입니까?”
“그게 본래 한국령이었다네.”
“…….”
“1945년 해방이 되고 나서 1948년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지?”
김동일의 벌어졌던 입이 닫혔지만 내친김이다.
서동수가 말을 이었다.
“1948년 8월 15일 정부가 수립되고 나서 이승만 대통령은 일본 정부에 수십 번이나
대마도 반환 청구를 했다네.
당시 일본을 점령하고 있던 맥아더 사령부에도 말이지.
당시 요시다 총리는 반환 청구에 진절머리를 내다가 6·25전쟁이 일어나자
만세를 불렀다는 소문이 났네.”
“…….”
“전쟁 때문에 반환 청구를 할 수 없게 되었으니까 말이지.”
“…….”
“지금 독도에 대한 일본의 영토 주장은 대마도를 덮기 위한 선제 작업이라는 말도 있네.
미국도 확대를 원치 않고 말이야.”
그때 김동일이 심호흡을 하고 나서 말했다.
“좋습니다. 남조선이 미국 때문에 그 주장을 못 한다면 제가 하지요. 대마도가 우리 땅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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