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3> 27장 지도자 [5]
(562) 26장 지도자 <9>
서동수의 시선을 받은 마담이 빙긋 웃었다.
가지런한 흰 이가 드러나면서 얼굴이 환해졌다.
“제가 마실게요.”
잔을 가져간 마담이 제 손으로 술을 따르려고 했으므로 유병선이 주전자를 빼앗았다.
“아이고, 제가 따라 드리지요.”
“감사합니다.”
마담이 머리를 숙였을 때 유병선이 인사를 했다.
“제가 신의주 장관 비서실장 유병선입니다.”
“죄송합니다.”
술잔을 두 손으로 쥔 마담의 얼굴이 빨개졌다.
“제가 경황이 없어 인사를 못 드렸습니다. 마담 정유선입니다.”
“여기 주인입니다.”
하고 박세중이 거들었다.
“정계(政界)의 대모(代母)로 통하지요. 이 사람을 통하면 간첩까지 만날 수 있지요.”
그때 유병선이 웃음 띤 얼굴로 안종관을 보았다.
“그래서 안 특보가 이곳을 추천하셨지요.”
마담의 시선이 안종관을 스치고 지나갔다.
여전히 상기된 얼굴이다.
“안 특보님은 저하고 초면이시지만 국가정보원 계실 때 제 이야기를 많이 들으셨을 것 같은데요.”
안종관이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것이 우스워 서동수가 짧게 웃었다.
“이렇게 얽히는 걸 보면 세상은 좁아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리고…”
술잔을 든 박세중이 따라 웃었다.
“인생은 한순간이지요. 화무십일홍 권불십년입니다. 장관님.”
그때 마담이 한 모금 술을 삼키더니 서동수를 보았다.
“이렇게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장관님.”
“나도 일찍 마담을 만났다면 대통령 후보로 진즉 나섰을 텐데,
남북연방 작업도 지금보다 더 빨리 진행되었을 것이고.”
“하하하.”
박세중이 소리내어 웃었을 때 마담이 웃음이 지워진 얼굴로 서동수를 보았다.
“저도 장관님 지지자예요.”
“이런, 고맙군.”
서동수가 팔을 뻗어 마담의 허리를 당겨 안았다.
“오늘 밤에도 날 지지해 주었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미리 안 될까?”
“생각해 보고요.”
박세중이 술을 빨리 마시는 바람에 술 주전자가 다섯 개째 들어왔다.
상에는 한정식 요리가 수십 가지 놓여 있었지만 거의 손을 대지 않는다.
제각기 감회가 새로웠기 때문일 것이다.
밤 11시 반이 되었을 때 서동수는 방에 자신과 박세중 둘이 앉아 있는 것을 깨달았다.
파트너 둘까지 넷이다.
마담이야 가끔 들락이는 터라 신경 쓰지 않았지만 안종관과 유병선은 화장실에 가는 것 같더니
들어오지 않는다.
그때 박세중이 말했다.
“장관께서는 보좌역이 강하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부럽습니다.”
“그런가요? 감사합니다.”
유병선과 안종관을 말하는 것 같다.
둘이 유능하기도 했지만,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은 지도자의 능력이다.
부하들의 능력을 발휘시키고 잠재력을 배양하는 것 또한 지도자의 몫인 것이다.
지도자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
성공한 지도자는 운이 만들어 주지 않는다.
지도자는 경륜이 필요하다.
아랫사람을 포용하고 윗사람을 받드는 습성이 몸에 밴 후에 정의감과 불굴의 의지,
애국심까지 곁들여야 된다.
그런 과정을 겪는 데는 직장이나 군대가 적당하기는 하다.
그때 방문이 열리더니 마담이 들어섰다.
(563) 26장 지도자 <10>
서동수의 옆자리에 앉은 마담이 낮게 말했다.
“실장님과 특보께서는 먼저 가셨습니다.”
마담이 상기된 얼굴로 서동수를 보았다.
“애들 내보낼까요?”
“아, 갈 때가 되었다는 말이군.”
머리를 끄덕인 서동수가 지갑을 꺼냈더니 마담이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실장님이 계산하고 가셨습니다.”
“여기 오신 손님들은 제 손으로 계산하지 않나?”
서동수가 묻자 박세중이 소리 내서 웃었다.
“다 대기업 총수에다 높으신 분들이니까요. 솔직히 저도 지갑 꺼낸 적이 없습니다, 장관님.”
“난 이 재미로 돈 버는데.”
지갑에서 100만 원짜리 수표를 꺼낸 서동수가 박세중과 자신의 파트너에게 한 장씩 나눠주고
마담에게는 세 장을 주면서 말했다.
“실장, 특보 파트너한테 한 장씩 줘요.”
“한 장 남는데요?”
마담이 묻자 서동수가 정색했다.
“그건 마담 팁.”
“제 거요?”
“이거 내 개인 돈이야, 좀 씁시다.”
“저도 주시는 거죠?”
“돈은 쓰라고 버는 거야. 소비가 많아져야 경제가 살아나.”
“잘 쓸게요.”
마담이 일어나면서 파트너들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고는 셋이 방을 나갔으므로 안에는 둘이 남았다.
그때 술잔을 든 서동수가 박세중을 보았다.
“박 의원님.”
“예, 장관님.”
박세중이 똑바로 서동수를 보았다.
눈동자가 흔들리지 않는다.
서동수는 그 눈빛에 믿음이 담겨 있는 것을 느꼈다.
이쪽도 그렇게 보일 것이었다.
정치인 중에서 서동수가 가장 신뢰해온 사람이다.
그것을 박세중도 알고 있는 것이다.
“이건 내가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비서실장, 특보한테도 말입니다.”
한 모금 술을 삼킨 서동수가 말을 이었다.
“신의주에 기반이 잡히면 난 장관직도 그만두고 기업으로 돌아갑니다.”
숨을 죽인 박세중을 향해 서동수가 빙그레 웃었다.
“그때 박 의원께서 신의주 장관직을 맡으시지요.
그러고 나서 한 대통령님과 호흡을 맞춰 나가시는 것입니다.”
“장관님.”
박세중이 갈라진 목소리로 불렀을 때 서동수가 말을 이었다.
“김동일 위원장도 내가 추천한 분은 거부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아니. 저는…….”
“그렇게만 알고 계시지요. 짐을 넘기는 것 같아서 오히려 제가 송구합니다.”
그때 방문이 열리더니 남자 지배인이 몸을 반쯤만 보이고 말했다.
“준비되었습니다. 나오시지요.”
“자, 그럼.”
자리에서 일어선 박세중이 서동수에게 손을 내밀었다.
“장관님, 그럼 다시 뵙겠습니다.”
술을 같이 마셨다고 대문까지 나란히 나갈 필요는 없는 것이다.
박세중이 먼저 나갔고 서동수는 10초쯤 늦게 방을 나왔다.
복도에서 기다리던 남자 지배인이 잠자코 앞장을 서더니 옆쪽 토방으로 나왔다.
구두가 토방 아래에 놓여 있다.
구두를 신은 서동수가 인적 없는 정원을 건너 지배인의 뒤를 따라 옆문으로 나왔다.
골목 안에 서동수의 차가 기다리고 있다.
최성갑이 서 있다가 문을 열었다.
차 안으로 들어서던 서동수가 숨을 들이켰다.
여자 하나가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마담이다.
정유선이라고 했던가?
'소설방 > 서유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85> 27장 지도자 [7] (0) | 2015.02.17 |
---|---|
<284> 27장 지도자 [6] (0) | 2015.02.17 |
<282> 27장 지도자 [4] (0) | 2015.02.17 |
<281> 27장 지도자 [3] (0) | 2015.01.31 |
<280> 27장 지도자 [2] (0) | 2015.01.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