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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0> 27장 지도자 [2]

오늘의 쉼터 2015. 1. 31. 13:56

<280> 27장 지도자 [2]

 

 

(556) 26장 지도자 <3>

 

 

 

김동일의 얼굴에 다시 웃음이 떠올랐다.

“이번에 밀어준다면 차기에는 제가 통일 한국의 대통령이 되는 것을 약속했습니다.”

“…….”

“구체적인 계획까지 보내왔습니다.”

“누군지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그럼요.”

서동수의 시선을 받은 김동일이 입맛을 다셨다.

“셋이 다 그렇습니다.”

민심이 그렇다.

차기 대통령의 임기 내에 남북 간 대타협이 이루어지고 차차기 대통령은

남북연방의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모두 신의주 덕분이다.

신의주가 남북한의 독소를 다 빨아들여 희석시켰다.

김동일이 말을 이었다.

“나는 젊지만 남조선의 어떤 정치인보다 권력의 생리를 잘 압니다.

그것은 제 아버지한테서 집중적으로 배우고 보아왔기 때문이지요.”

김동일이 똑바로 서동수를 보았다. 이제 얼굴이 굳어 있다.

“그리고 겪었습니다.

내가 지도자로 겪어온 3년은 아마 보통 정치인의 30년어치는 되겠지요.”

“자, 그럼 지도자 동지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서동수가 말을 잘랐다.

김동일에게 이런 식으로 말을 하는 인간은 세계에서 서동수뿐일 것이다.

그때 김동일이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예. 난 셋 다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럼 민족당 후보를…?”

“말도 안 되지요.”

쓴웃음을 지은 김동일이 서동수를 보았다.

“서 장관께서 5년 동안 기반을 굳혀 주시지요.

시작을 하셨으니 매듭을 지어주시길 바랍니다.”

서동수가 숨을 들이켰다.

지금까지 수십 명으로부터 수백 가지 권유를 받았지만

지금처럼 가슴에 파고든 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용이야 다 비슷했지만 화자(話者)의 진정성 때문인 것 같다.

“나는 그런 그릇이 못 됩니다.”

다시 서동수가 수백 번째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시선은 내렸다.

“나는 과대평가된 인간입니다. 대업을 마무리할 자신도 없습니다.”

“그럼 저는요?”

불쑥 김동일이 물었으므로 서동수가 머리를 들었다.

김동일의 두 눈이 번들거리고 있었으므로 서동수는 몸을 굳혔다.

김동일이 한마디씩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저도 좋아서 이 자리에 앉은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 할아버지가 이루려고 하신 과업을 물려받은 것이지요.

어쩔 수 없이 말입니다.”

서동수가 숨을 죽였고 김동일의 말이 이어졌다.

“저보다 뛰어난 인재는 얼마든지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말문이 막힌 서동수는 눈도 껌벅이지 못했고 김동일의 목소리에 열기가 더해졌다.

“인간은 각각 과업을 지고 태어납니다.

능력이 모자란다고 싫다고, 그 과업을 피하면 안 됩니다.

이것이 내 소신입니다.”

 

서동수가 길게 숨을 뱉었다.

이것이 온갖 호사를 누린다고 보도되는 김동일의 이면이다.

도망칠 수도 없는 현실인 것이다.

이윽고 서동수가 말했다.

“잘 알겠습니다. 이 문제를 한국 대통령과 함께
상의해도 되겠습니까?”

잠시 서동수를 응시하던 김동일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시지요.”

“한국 대통령도 위원장님을 믿고 계셔서 그럽니다.”

제3자의 역할은 이럴 때 중요하다.

그리고 이렇게 덕(德)이 쌓이는 것이다.

 

 


 

 

 

(557) 26장 지도자 <4>

 

 

 

 

“잘하셨습니다.”

안종관이 말했다.

“김 위원장도 진심을 털어놓으신 것입니다. 이런 기회가 자주 만들어져야 합니다.”

오후 9시 반, 저녁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마친 김동일은 바로 돌아갔으므로

머문 시간은 두 시간도 되지 않는다.

관사의 응접실에 둘러앉은 유병선과 안종관에게 서동수가 내용을 말해준 것이다.

유병선도 거들었다.

“아직 대선까지는 10개월 남았습니다. 결정하실 시간은 석 달쯤 있습니다.”

둘에게서 시선을 뗀 서동수가 말했다.

“대통령님을 만나야겠어. 위원장의 신뢰를 얻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야.”

“그 방법은 이미 위원장이 제시했지 않습니까?”

안종관이 똑바로 서동수를 보았다.

“장관님이라고 말씀입니다.”

“위원장은 인간은 제각기 과업을 갖고 태어난다고 했지만, 난 아니오.”

쓴웃음을 지은 서동수가 머리를 저었다.

“위원장한테 차마 말은 못 했지만 지금까지 내 인생은 내가 만들었어.

내가 내키지 않는데 휩쓸려 들어가기 싫어.”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과업인데도 말씀입니까?”

“말은 거창하지만 난 이순신 같은 위인이 아니오. 난 속물이오.”

서동수가 안종관을 노려보았다.

“그동안 나보다 능력이 있는 분을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을 거요.”

그때 유병선이 부드러운 표정으로 서동수를 보았다.

“장관님께선 회사로 돌아오실 수가 있지 않습니까?”

“무슨 말이야?”

서동수가 눈썹을 좁히고 유병선을 보았다.

“회사로 돌아오다니?”

“대통령직을 마치시고 말씀입니다.”

정색한 유병선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욕심을 버리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욕심을 버리면 멀리, 통 크게 보실 수가 있고 사심 없는 결단을 내리게 됩니다.

그래서 장관님이 적격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 돌아갈 곳이 없나?”

“장관님하고는 다르지요. 잘 생각해 보시지요.”

“생각은 무슨 생각.”

그때 안종관이 나섰다.

“어쨌든 위원장께도 그렇게 말씀 드렸으니 대통령과 상의를 해 보시지요.”

“역사고 민족이고 국가고 그런 거창한 말은 앞으로 내 연설문에서도 빼도록 해요.

그런 걸 의식하고 행동하는 건 마치 각본 읽고 연극을 하는 것 같으니까.”

소파에 등을 붙인 서동수가 앞쪽의 벽을 보았다.

먼 곳을 보는 시선이었으므로 둘은 입을 다물었다.

그때 서동수가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그러고 보니 난 하나뿐인 내 딸한테 제대로 아버지 노릇도 못 해주었어.”

둘은 숨을 죽였고 서동수의 말이 이어졌다.


“돈으로 보상을 해주었지만 내 딸은 할머니와 큰어머니가 키웠어. 이것이 인간 서동수의 현실이야.”

그러고는 서동수가 눈동자의 초점을 잡고 둘을 보았다.

“자, 오늘은 이만합시다.”

자리에서 일어선 서동수가 웃음 띤 얼굴로 둘을 보았다.

“난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두 분이 있어서 행복합니다.”

둘이 방을 나갔을 때 심호흡을 한 서동수가 자리에 앉아 핸드폰을 들었다.

연락처 버튼을 누르자 번호와 이름이 주르르 떴다.

서동수의 시선이 서미혜에 머물렀다.

그런데 시선은 밑으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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