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유혹

(76) 첫사랑-13

오늘의 쉼터 2015. 2. 15. 12:35

(76) 첫사랑-13

 


 

 

 

그 여학생이 바로 유미였다.
 
수업이 끝나자 여자애들이 한마디씩 했다.

“야! 너 몸매 끝내주더라.”

“우리 다음 학기 여체 크로키는 유미가 모델 하면 되겠다.”

“샤론 스톤은 담뱃불 하나로 세웠는데, 쟨 그딴 거 없이도 해냈잖아. 대단하다.”

“부러워….”

“그런데 교수님이 화난 거 아닐까?”

“쟤, 퇴학당하면 어떡하니?”

“야, 그럼 우리가 다 나서줘야지.”

그때 과대표가 나섰다.

“드디어 유미가 해냈다. 자! 약속은 약속이다. 만원씩들 내셔!”

과대표는 돈을 걷어 봉투도 없이 유미에게 건네주었다.
 
꼬깃꼬깃한 지폐들을 펴서 지갑에 넣으니 오랜만에 지갑이 두툼해졌다.
 
여자애들이 흩어지고 유미는 홀로 남았다.
 
창밖으로부터 햇살이 들어왔다.
 
갑자기 이게 현실인지 비현실인지 몽롱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기이했다.
 
아까 수업시간 중 뭐가 일어날 듯 일어나지 않는 답답한 긴장을 못 견뎠던 걸까?
 
아니면 무언가를 깨고 싶었던 무언의 시위였을까?
 
그런데 가슴 한쪽이 뻥 뚫린 것처럼 시원한 느낌도 들었다.
 
아까 ‘목석’의 눈빛을 보면서 염력을 걸었다.
 
날 원하지, 그렇지? 사촌오빠 수민에게 하듯 유미는 눈으로 물었다.
 
‘목석’이 반응했다는 게 유미도 싫지 않았다.
 
그런데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무엇보다도 유미를 그렇게 나서게 했던 것은 돈 때문이었다.
 
월세가 석 달치나 밀렸다.
 
나날이 조여오는 집주인의 독촉 때문에 괴로웠다.
 
50만원이란 돈은 유미에게 큰돈이었다.
 
두 달치의 집세와 아껴 쓰면 생활비도 될 돈이다.

유미는 돈이 든 백을 챙겨 교수의 방을 노크했다.
 
교수는 유미를 빤히 쳐다보았다.
 
“너 보기보다 대담하더라. 왜 그랬니?”

유미가 고개를 숙였다.

“돈이 필요했어요.”

“돈? 무슨 돈?”

“월세하고…생활비요.”

무릎에 올려놓은 값싼 비닐 백에 갑자기 눈물이 톡, 떨어졌다.
 
교수가 말을 잊고 한동안 유미를 바라보았다.

“너 모델 일은 해 봤니?”

유미는 고개를 저었다.

“누드모델도?”

“아뇨.”

 

“그렇다면 모델 일 좀 해 볼래?”

 

유미가 고개를 들고 교수를 바라보았다.

 

“넌 몸도 좋지만 몸을 표현하는 데 순발력과 재능이 있는 거 같다.
 
어쩌면 선배 원로 화가의 작업 모델로도 소개를 해줄 순 있다만…
 
그건 아직 네가 어려서 좀 그렇고. 다른 학교 미술대학에 아는 교수들이 있으니
 
인체 모델로 내가 소개를 좀 해보마.”

 

그 교수의 소개로 인근의 미술대학에서 모델 아르바이트를 했다.
 
한동안 카페의 아르바이트와 모델 일을 함께 했다.
 
‘돈 돈’하며 댕댕거리던 지긋지긋하게 가난하던 시절이었다.

 

그때 타 대학의 미술대학에서 만난 남자가 바로 정효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유미는 처녀였다.
 
아니 몇 번인가 처녀성을 잃을 뻔하기도 했지만, 기필코 지켜냈다.
 
순진한 시절이었다.
 
엄마의 영향 탓이었을 것이다.
 
정효수가 생각나자 유미는 고개를 흔들어 생각을 떨쳐냈다.
 
이제 과거는 흘러갔고, 유미는 그때의 유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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