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유혹

(69) 첫사랑-6

오늘의 쉼터 2015. 2. 12. 01:29

(69) 첫사랑-6

 

 

 

 

 

“네 에미도 모르는 걸 내가 어떻게 아니?
 
하긴 네 에미가 누구 씨인 줄 모를 리는 없을 거야.
 
그런데 자존심 세고 독불장군인 네 에미가 입을 봉하고 죽었으니 누가 아냐?”

“그런데 엄마는 왜 그 조씨 아저씨에게서 헤어 나오지 못했어요?”

엄마는 마치 거미줄에 걸린 벌레처럼 그 남자 앞에서는 온 신경이 마비되는 것 같았다.

“아, 그놈이 보통 놈이냐? 부산 바닥에서 아무도 못 건드리던 놈 아니냐.”

“정말로 그 사람이 제 아빠는 아니겠죠.
 
그 사람이 아빠라고 할 때마다 저는 화가 나서 미칠 거 같았어요.”

“너 어디가 그놈이랑 닮았냐?”

이모가 항변하듯 말했다.
 
조씨는 걸핏하면 이모의 가게에 와서도 행패를 부렸다.
 
하지만…유미가 어렸을 때의 어느 날,
 
이모와 엄마가 소곤대는 소리를 잠결에 들은 적이 있었다.

“신 선생, 이혼했다더라. 아직 널 잊지 못한다고 하더라.”

“언니, 그래서 날더러 이 꼴로 그 사람과 결혼이라도 하라구?”

“여자는 울타리가 있어야 된다.
 
또 너도 너지만, 이게 다 유미를 위해서가 아니니? 핏줄을 속이면 안 된다.”

“그 사람이 유미 아빠라도 된다는 말투네.”

“그럼, 아니냐?”

“유미 아빠는…내가 지켜줘야 할 사람이야.
 
내가 흠집을 내서는 안 되는 아주 멋진 사람이야.”

유미는 어린 시절 잠결에 들은 엄마와 이모의 대화를 확인해보고 싶었다.
 
이모는 곧 한국을 떠날, 어쩌면 이 세상에 아주 오래 머물지는 못할 사람.
 
어쩌면 이게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랐다.
 
이모는 우선 발뺌부터 했다.

“그런 얘길 했다구? 네가 꿈 꾼 거 아니냐?”
 
어쩌면 꿈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때부터 유미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아버지의 모습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깡패 양아치 조씨 아저씨가 자기가 아빠라고 할 때마다 그를 죽이고 싶었다.
 
한때는 유전자 검사라도 받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모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사실은 네 엄마가 결혼을 약속한 첫사랑이 있었지.
 
별일이 없었다면 결혼해서 행복했을 텐데….”

“그래요? 그런 소린 처음인데? 그 사람이 누군지 말해 주실래요?”

“그건 뭐하게?”

이모는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그때 성당에 나가던 청년이었는데 대학생이었어.
 
신 선생이라고….
 
지금은 시내 중학교에서 교장으로 있는데,
 
학교 회식 같은 걸 하느라 일부러 가끔 여길 찾아주기도 해.”

“그런데 왜 결혼하지 않았어요?”

“갑작스레 네 엄마가 죽어도 못한다고 버텼다.
 
그 무렵 네 엄마가 임신을 했어. 그런데….”

그런데 그 씨가 누구의 씨인 줄 모른다는 이야기다.
 
유미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마치 맘마미아의 스토리 같다.
 
그러나 그리스가 아니라 부산이 배경인 이 스토리는 왜 이리 칙칙하고 진부한 걸까?

“어쨌든 내일이 네 엄마 죽은 날이다.
 
해마다 내가 네 엄마 다니던 성당에서 연미사를 드렸다.
 
나랑 같이 내일 성당에 가자.”

예전에 엄마의 손에 이끌려 갔던 성당의 무겁고도 압도적인 분위기가 떠올라서
 
내키진 않았지만, 어쨌거나 내일은 엄마의 기일이다.
 
그러다 유미는 생각난 듯 마음속에서 망설이던 수민의 소식을
 
이모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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