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유혹

(71) 첫사랑-8

오늘의 쉼터 2015. 2. 15. 12:11

(71) 첫사랑-8 

 

 

 

 

 

그녀였다.

“……?”

유미가 고개를 들고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그녀는 좀 전에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던 미녀 가수다.

“유미 맞지?”

“네에… 누구시죠?”

그녀가 환하게 웃었다.

“나야, 나. 수민이.”

유미가 얼결에 일어나며 부르짖었다.

“어? 수민 오빠?”

“어머, 얘는!”

그녀가 손가락을 입에 대고는 눈을 흘기며 웃었다.

“엄마가 아무 말도 안 하셨나보네. 놀랐지? 암튼 나가자. 나 일 끝났어.”

얼결에 유미는 그를, 아니 그녀를 따라 나섰다.

“오빠, 어떻게 된 거야?”

혼란에 빠진 유미는 수민이 낯설었다.
 
그러나 수민은 다정한 언니처럼 유미의 팔짱을 꼈다.

“얘, 오빠, 오빠 하지마. 아유, 징그러. 과거는 흘러갔다,
 
얘. 그 얘긴 나중에 하고, 너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옷만 갈아입고 금방 나올게. 오늘 우리 집 가서 자자. 마침 나 혼자 있어.”

분장실에서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수민이 나왔다.
 
전혀 의심할 바 없는 여자다.
 
유미는 수민이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거지?
 
마치 눈앞에서 사기를 당해도 이렇게 황당하진 않을 것이다.
 
수민이 다시 유미의 팔짱을 다정하게 끼고 거리로 나와 택시를 잡았다.

택시가 광안대교를 지날 때, 할 말을 잃고 멍하게 있던 유미에게 수민이 속삭였다.

“이제부턴 수민 언니라고 불러.”

술이 취하지도 않았는데 점점 멍해졌다.
 
고향 부산의 야경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아름답지만
 
이제부터 오빠를 오빠로 부르지 못하는 이상한 나라로 들어온 것 같았다.
 
수민은 시내의 원룸 오피스텔에 살고 있었다.
 
식탁에 양주와 맥주를 내놓고 수민은 욕실로 들어갔다.
 
“금방 씻고 올게. 이 가면 같은 화장을 빨리 벗겨내야지. 답답해.”

집 안에 남자의 흔적은 없지만 두 개의 사진틀에 같은 남자의 얼굴이 들어있었다.
 
수민과 다정하게 포즈를 취한 사진과 선박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아아, 그 사람 내 남자 친구야. 지금은 항해 중이야. 항해사거든.”

화장을 지우고 샤워를 끝내고 티셔츠와 반바지를 편하게 입고 나타난 그녀는,
 
바로 미소년일 때의 수민 오빠의 그 모습이었다.
 
유미보다 더 풍만한 가슴과 엉덩이만 뺀다면.

“넌 여전하구나.”

유미를 한참 바라보던 수민이 말했다.

“나야 뭐 생긴대로 살고 있으니….”

수민이 능란하게 양주와 맥주를 섞어 폭탄주를 제조했다.

“술 좀 하지? 20년 전의 젖비린내 나는 오유미는 아니겠지.
 
보아하니 샘날 정도로 멋진 여자가 된 거 같은데.”

수민이 제조한 폭탄주 잔을 유미에게 건넸다.

“자아, 우리 러브샷 할까? 그래도 우리, 첫사랑이었는데. 자아, 원샷!”

첫사랑이었는데…. 수민의 입에서 나온 과거형의 그 문장이 붉은 동백꽃이 떨어지듯
 
유미의 쓸쓸한 가슴에 툭, 떨어졌다.
 
목이 댕강 잘리듯 떨어지는 동백꽃처럼 그 첫사랑 순정은 이렇게 사망하시는구나.
 
러브샷을 하며 한 번에 폭탄주를 털어 마시고 나자
 
가슴에 회오리바람이 올라오듯 슬픔이 잠깐 솟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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