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유혹

(68) 첫사랑-5

오늘의 쉼터 2015. 2. 12. 01:27

(68) 첫사랑-5

 

 

 

 

 

오랜만에 이모를 보니 엄마 생각이 절로 났다.
 
이모는 그새 많이 늙어 있었다.
 
이모부가 세상 떠난 지 벌써 십년이 다 되어간다.
 
여장부 같은 이모는 평생 골골한 남편을 대신해서 살림을 꾸렸다.
 
이제는 여장부 같은 이모도 지병으로 가게를 정리하고 미국에 살고 있는
 
맏딸인 수진 언니의 집으로 들어간다고 했다.
 
수진 언니는 수민의 누나,
 
즉 유미의 이종사촌 언니다.
 
유미보다 네 살이 많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유미는 수진언니보다는 수민과 더 잘 지냈다.

“너를 부른 것은, 이제 내가 미국으로 가면 너를 언제 볼까 싶기도 하고….
 
이번에 가게랑 땅이랑 다 정리하면서 네 엄마 몫까지 좀 나눴다.
 
얼마 안 된다.
 
월급쟁이 연봉 정도밖엔 안 돼.
 
애초에 우리 집에서 일하면서 네 엄마랑 약조한 지분이 있거든.
 
불쌍한 년, 평생 팔자가 안 풀려서 고생만 하다 갔는데
 
갑자기 죽어버려 미리 뭘 챙길 수가 있었어야지.”

이모가 수표를 내밀었다.

“이모, 저한테까지 뭘 이렇게….”

유미가 선뜻 받지 못하고 있자 이모가 또 다른 서류를 꺼냈다.

“이게 뭐예요?”

“땅 문서다.”

“네?”

“네 땅이다.”

점점 모를 소리다.

“너를 낳은 후 네 에미가 어딜 다녀오더니 정신 나간 얼굴로 돈가방을 내밀었다.
 
그러면서 그 돈에 침을 뱉으며 손대고 싶지 않다고 하더라.
 
그게 무슨 돈인지 내막은 절대 얘기 안 하더라.
 
다만 네 장래를 위해 아껴두고 싶다고 하길래,
 
마침 그 돈으로 살 만한 땅을 내가 사줬다.
 
현금으로 갖고 있으면 그 야차 같은 조가 놈의 아가리에 들어갈 일도 걱정되고….
 
그래서 명의를 내 이름으로 해 뒀는데,
 
이번에 정리하려는데 맞춤한 임자가 없더구나.
 
싸게 팔든 명의 변경을 하든 네가 알아서 하려무나.
 
워낙에 싸게 샀던 땅이지만 더 두면 앞으로 괜찮을 거다.”
 
갑자기 유미 앞으로 현금과 이백 평의 땅이 선물로 떨어졌다.
 
지금이야 유미가 그럭저럭 살고 있지만,
 
한때 유미는 너무도 살 길이 막막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부자들을 모조리 총으로 쏘고 싶거나 백화점에서 미친 듯 물건을 훔치고 싶은 적도 있었다.
 
그때, 고향이나 엄마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던 존재들이었다.
 
가진 것이라고는 남들 다 가지고 있는 몸뚱이 하나밖에 없는 처지를 얼마나 비관했던가.
 
그러다 남들이 자신의 그 몸뚱이를 훔치고 싶어한다는 걸 체득한 후부터 유미는
 
그것을 무기로 세상을 헤쳐나가야 했다.
 
그런 유미에게 왜 엄마는 일언반구도 그 얘기를 하지 않았을까?
 
하긴 불의의 죽음을 맞은 엄마가 그런 걸 이야기할 틈이 없었을 것이다.

“이게 무슨 돈이기에 엄마가 침을 뱉었어요?”

유미의 물음에 이모는 불편한 내색을 감추지 못했다.

“글쎄다. 무슨 곡절이 있는지…원.
 
얘, 그나저나 그 조가 놈이 어디서 홍길동처럼 나타나면 큰일이다.
 
돈 냄새 맡는 데는 코가 개코다.”

“참, 그 사람은 지금 뭐해요?”

“글쎄, 아직 빵깐에 있는지 나와서 배를 타고 처돌아다니고 있는지
 
또 어느 년을 틀어쥐고 괴롭히고 있는지….”

유미는 나쁜 기억을 떨쳐내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이모…. 지금은 아무 관심 없지만,
 
이모도 역시 제 아버지가 누군지 정말 모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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