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홀리데이 콜렉션-3
유미는 거푸 석 잔을 마셨다.
그도 두 잔을 더 시켜 마셨다.
취기가 재빨리 돌았다.
무슨 말을 주고받았는지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만 취하기 전에 이런 대화와 장면이, 편집이 엉망인 영화처럼 기억이 났다.
“오 교수님, 전 여성의 블루오션을 연구하려고 합니다.”
“바로 그게 포인트죠.
근데 이사님은 여자의 푸른 바다에 빠져서 허우적댄 적 있어요?”
“어휴, 썰렁해요.”
그가 냉소적으로 비아냥거렸다.
이 남자 얼굴이 왜 이리 딱딱하냐.
취한 유미는 그게 맘에 안 들었다.
“윤 이사님, 좀 웃어요.
얼굴이 왜 그렇게 뻣뻣해요?
잘 웃지도 않고. 내가 웃기는 얘기 하나 해 줄까요?”
유미가 혀 꼬부라진 소리로 말했다.
“어떤 남자가요. 의사가 처방해준 비아그라를 먹었대요.
그런데 아래는 커지지 않고 자꾸 얼굴이 빵빵하게 커졌대요.
그래서 그 남자가 의사한테 따지러 갔어요.
왜 아래는 그대론데 얼굴이 커지냐고! 의사가 뭐라 그랬게요?”
“모르겠는데….”
“야, 니 얼굴이….”
갑자기 유미가 웃음을 터트렸다.
“아, 어떡해. 입에 담을 수가 없는 단어인데. 야, 니 얼굴이, ㅈㅈ….”
유미가 웃음이 복받쳐 말을 못 이었다. 그러다 뱉어버렸다.
“거시기처럼 생겨서 그렇다! 윤 이사님도 혹시 비아그라 먹은 거 아니죠?”
그의 얼굴이 더욱 굳어졌다.
그러곤 기억나지 않는다.
아침에 유미의 룸 침대 밑에는 옷가지가 흩어져 있고 유미는 알몸인 채 침대에 들어 있는 것이다.
그건 꿈이었을까?
꿈이 아니라면 그와 이 방에서 무엇을 했을까?
자신이 알몸인 게 기분 나빴다.
그러나 만약 아무 일도 없었다면 그 또한 자존심 상하고 기분 나쁘다.
입질조차 하지 않았다면, 내가 출신 성분도 다르고 저질이라 생각했던 걸까?
취해서 정신 줄을 잠시 놓은 게 잘못이다.
유미는 식은 커피와 빵 조각으로 아침을 먹고 기분을 달래기 위해
수영복을 챙겨 실내 풀장으로 나갔다.
오랜만에 온 몸에 닿는 물은 유미의 개운하지 못한 기분을 씻어주었다.
몇 가족과 서양인 커플이 수영을 하고 있었다.
레인에서 한 남자가 물개처럼 멋지게 자유형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수영모와 물안경을 쓴 남자의 어깨와 상체 근육이 멋졌다.
유미는 천천히 배영과 평영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런데 그 남자가 유미를 보더니 V자를 그린다.
내 몸매가 죽인다는 뜻인가?
그 남자가 유미가 있는 쪽으로 왔다.
“잘 잤어요?”
남자가 물안경을 올리며 웃고 있다.
윤 이사였다.
“수영, 쫌 하시네요.”
“그쪽도 한 몸매 하십니다.”
“꽤 자신만만하신가 봐요.”
유미가 오늘 아침의 치욕이 생각나서 말했다.
“비아그라 같은 거 안 먹거든요.”
“저도 취했지만 윤 이사님도 많이 취했죠?”
“별로. 술이 별로 세지 않으시던데… 뭘 믿고 그렇게 취했어요?”
“믿을 만한 사람, 아니 긴장감 없는 남자 앞에선 그렇게 되네요.”
“그럼 오늘 저녁이나 합시다. 긴장하지 말고 편안하게.”
그렇게 해서 그와 저녁을 먹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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