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홀리데이 컬렉션-2
손님이 별로 없는 바에는 재즈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유미는 카운터에 앉아 바텐더에게 마르가리타 한 잔을 주문했다.
그 사이에 실내를 둘러보던 유미의 눈과 그 남자의 눈이 마주쳤다.
그가 싱긋, 미소를 지었다.
“어머! 윤 이사님, 웬일이세요?”
그는 최고위 과정을 수강했던 기업체의 젊은 임원이었다.
“방해가 안된다면 옆에 앉아도 되겠습니까?”
그가 유미의 대답을 듣기 전에 유미의 옆 자리로 다가앉았다.
그는 마티니를 마시고 있었다.
“반갑네요. 새해 첫날부터….”
“예. 그러네요. 이사님은 웬일로…?”
“오랜만에 쉬고 있어요. 이 호텔 객실에 묵고 있어요. 오 교수님은?”
“어머! 저도요.”
그때 마르가리타가 나왔다.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그러다 두 사람이 동시에 물었다.
“그런데 왜…?”
왜 새해 첫날부터 혼자서 호텔에 청승맞게 묵고 있냐.
그런 질문일 텐데…두 사람이 멋쩍게 웃었다.
그 웃음이 대답이 되었다.
윤동진이란 이 남자는 서열 30위권의 YB개발 창업주의 차남으로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것으로 유미는 알고 있다.
잘 다듬어진 몸과 큰 키에 윤곽이 뚜렷한 얼굴의 소유자다.
외모도 그럴싸하지만 패션 감각도 꽤 있다.
아르마니나 휴고 보스 같은 옷이 잘 어울리는 남자다.
국내에서 일류대학을 나오고 미국에서 정통 MBA 코스를 밟았다 한다.
유미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새해 첫날부터 운수대통이네.
홀리데이 컬렉션으로는 꽤 괜찮은 물건이다.
보통 외국에 나가게 되면 현지의 외국인이나 출장 온 남자와 원나잇 스탠드를 하게 된다.
해외파와 한 번씩 연례행사로 그렇게 물갈이를 해주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윤동진은 껍데기와 머릿속에 든 것 대부분이 해외에서 온 것이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 휴가를 맞이하여 명품 화장품회사에서는
홀리데이 컬렉션이라는 스페셜 에디션을 출시한다.
이때 사지 않으면 1년을 기다려야 한다.
인규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크리스찬 디올 제품을 선물했다.
장식도 예쁘고 무엇보다 여행을 가더라도
그거 하나만 있으면 색조화장은 완벽하게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윤동진은 홀리데이 컬렉션 같은 존재다.
“그동안 강의 정말 멋졌어요.
여성들을 위한 감성마케팅에 큰 도움이 될 거 같아요.”
“아파트 많이 짓는 회사잖아요.
사실 집은 여성들의 감성을 무시하면 안 되죠.
끊임없이 여자에 대해 알아야 해요.”
“그런데 오 교수님의 결론,
여성들이 결국 성적으로든 뭐든 진화를 선도해 나갈 거라는 말씀은 이해가 가더군요.
하지만 결혼제도가 몇십 년 이내로 정말 무너질까요?”
“결혼, 어떻게 생각하세요?”
“미친 짓이죠. 그런데 ‘결론’도 미친 짓이에요.”
그가 냉소적으로 말했다.
“세상에 미치지 않고 온전하게 진화로 나가는 길은 없을 걸요.
진화는 그런 과정을 거쳐야 하니까요.”
“오늘 우리도 진화해 볼까요? 그런 의미에서 한 잔 더?”
“당근이죠.”
유미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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